알파고와 알파폴드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가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물질 구조와 합성법을 예측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을 개발했다. 실험실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일일이 물질을 합성하는 대신, 원하는 특성의 물질을 어떻게 만들면 되는지 미리 알려주는 초대형 데이터베이스가 탄생한 것이다.

구글 딥마인드는 29일(현지 시각) AI로 220만개의 새로운 물질 구조를 예측하고 이 중 가장 안정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38만1000개 물질을 선별했다고 밝혔다. 단백질 구조를 예측할 수 있는 AI ‘알파폴드’를 개발해 수개월씩 걸리던 단백질 분석을 단 며칠 만에 끝낼 수 있게 한 딥마인드의 성과가 무기물인 신소재 분야로 확대된 것이다. 연구 성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딥마인드는 “후보 물질에는 초전도체, 차세대 배터리 등 미래를 바꿀 잠재력을 지닌 소재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면서 “기존 과학자들의 연구 방식으로는 800년이 걸리는 일을 한 번에 해낸 것”이라고 했다. 딥마인드는 물질 38만1000개의 정보를 전 세계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공개할 예정이다.

그래픽=백형선

◇AI로 찾은 ‘새로운 물질’

지구상에 화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이미 알려진 원자 구조를 조금씩 변형하며 새로운 물질 구조를 찾았다. 하지만 원자 간 결합이 약해 구조를 지탱하지 못하고 흩어져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안정적인 물질을 만들어내도, 원하는 물성이 아니거나 독성이 나타날 경우 실험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런 복잡한 과정 때문에 지금까지 실험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으로 만들어낸 안정적 화합물은 4만8000개 정도에 불과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차세대 배터리를 위한 고체 전해질이나 더 효율이 높은 태양전지 소재 등을 찾는 신소재 연구는 대부분 이 4만8000개 물질 안에서 진행됐다”면서 “한정된 화합물 숫자는 첨단 산업 발전의 병목이 돼 왔다”고 했다.

딥마인드는 이러한 과정을 ‘물질 탐색용 그래프 네트워크(GNoME)’로 불리는 딥러닝(심층 학습) AI로 대체했다. GNoME는 기존에 알려진 물질 구조를 조금씩 바꿔가며 10억 개 이상 구조를 스스로 생성하고, 여기에 화학식을 조합해 무작위로 생성한 구조를 결합했다. 이어 물질의 안정성을 예측해 합성이 가능한지 확인하면서 물질 발굴 정확도와 탐색 속도를 높였다.

딥마인드는 GNoME이 제시한 신물질들이 실제로 합성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전 세계 과학 논문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GNoME으로 제시한 물질 중 736개가 이미 합성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AI가 이론적으로 찾아낸 새로운 물질이 실제 합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GNoME이 제시한 물질 가운데는 이차전지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리튬 이온 전도체 528개도 있었다. 또 전기저항이 없는 그래핀과 같은 형태의 화합물도 5만2000가지나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그래핀과 같은 층상 구조 화합물이 최대 1000개 정도일 것으로 여겨왔다. 딥마인드는 “이 중 일부는 초전도 물질의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치지 않는 실험 로봇

딥마인드는 외부 연구자들과 협력해 신물질을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로봇 실험실도 도입했다. 미 에너지국 산하 로런스버클리 국립 연구소(LBNL)가 개발한 ‘A-랩’은 로봇이 직접 분말 고체 성분을 혼합 가열하고 물질을 분석해 실험 결과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론과 계산으로 존재하는 새로운 물질들을 빠르게 만들어 보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했다. LBNL 연구팀은 기존에 공개돼 있는 3만 개 이상의 합성 방법을 A-랩에 학습시켜 각 물질을 합성하는 데 필요한 성분과 반응 온도 등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게 했다. A-랩은 로봇 팔 등을 활용해 물질 합성을 시도하며 적합한 방식을 찾아내 성공률을 높인다. A-랩이 GNoME가 안정성이 있다고 판단한 물질 중 58개의 물질 합성 실험을 위해 24시간 주 7일간 쉴 새 없이 실험을 거듭한 결과, 17일 만에 41건의 물질 합성에 성공했다. 성공률 71%로, 기존 건당 6개월 이상 걸리던 실험 기간을 크게 단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