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가동을 시작한 중국 진핑 지하실 입구의 모습. /신화통신

세계 최대 초심층 연구실로 꼽히는 ‘중국 진핑 지하 실험실’이 지난 7일 가동을 시작했다. 쓰촨성 진핑산에 있는 이 실험실은 지하 2400m 깊이 33만㎥ 규모로 ‘암흑 물질(dark matter)’ 탐사를 위한 것이다. 암흑 물질은 빛을 내지 않아 일반적 방법으로는 관측할 수 없지만, 에너지를 내는 질량(물체의 절대적인 양)을 가진 미지 물질을 뜻한다.

우주 과학의 거대 수수께끼라는 암흑 물질을 관찰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각국 정부는 암흑 물질을 탐사할 실험실 규모를 늘리는 추세다. 소중호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책임기술원은 “암흑 물질 관측은 매우 낮은 확률에 도전하는 것인 만큼 실험실을 키워서 가능성을 높이는 ‘규모의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더 깊게, 더 넓게… 지하 실험실 경쟁력

이번에 완공한 중국의 진핑 지하 실험실은 지난 2010년 4000㎡ 규모로 건설했다가 2020년부터 칭화대 등 연구 기관이 참여해 확장한 것이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높이의 5배나 되는 2400m 깊이에 있고, 실험실 규모는 올림픽 수영 경기장 120개가 들어갈 정도다. 이전까지 세계 최대 규모였던 이탈리아의 그란 사소 국립연구소보다 두 배가량 크다.

이처럼 깊은 지하에 대규모 실험실을 짓는 이유는 지상의 우주선(宇宙線·cosmic ray)을 차단해 암흑 물질을 비롯한 미지 입자를 연구하려는 것이다. 중국 칭화대 공학물리학과 웨첸 교수는 “진핑 실험실은 지구 표면과 비교하면 1억분의 1에 불과한 극소량 우주선에 노출되기 때문에 암흑 물질 연구를 위한 초청정(超淸淨·ultra-clean) 공간을 제공한다”고 했다.

캐나다의 서드베리 중성미자 관측소, 일본의 수퍼카미오칸데, 미국의 샌퍼드 지하 연구 시설 등은 오랜 기간 암흑 물질 연구를 이어오며 차츰 규모를 확장했다. 이 연구소들은 모두 노벨상 수상 연구자들을 배출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0월 지하 1000m 깊이에 암흑 물질 연구실 ‘예미랩’을 준공해 운영 중이다. 예미랩 준공 전에는 IBS 지하 실험 연구단이 강원도 양양의 지하 700m 깊이 실험실에서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래픽=양인성

◇존재하지만 관측된 적 없는 미지 물질

암흑 물질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중 26.8%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빛을 내지 않고 다른 물질과도 거의 반응하지 않아 관측이 어렵다. 암흑 물질 후보로는 윔프(WIMP·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 액시온(Axion) 등이 주로 거론된다. 현재로서는 제대로 관측된 적이 없는 가설 속 물질인 것이다. 세계 최고로 꼽혀온 그란 사소 연구소가 윔프를 관측했다고 발표했으나 실험 결과가 다른 연구진을 통해 재현되지 못해 여전히 논란이다.

암흑 물질의 존재는 1933년 스위스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가 처음으로 주장했다. 그는 빛을 통해 측정한 질량에 비해 은하가 더 빨리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빛으로 관측할 수 없는 숨은 질량이 있다는 의미다. 이후 다른 은하에서도 같은 현상이 관측되는 등 여러 증거가 모여 과학계에서 암흑 물질의 존재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암흑 물질을 관측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대표적 후보 물질로 꼽히는 윔프를 관측하려면 섬광 검출기를 활용한다. 미국 샌퍼드 연구소, 중국 진핑 실험실 등이 제논 액체를 가득 채운 장비를 사용하고 있고, 우리나라 예미랩은 아이오딘화나트륨 섬광단결정체를 사용한다. 암흑 물질이 관측기를 통과할 때 관측기 내부의 원자핵과 충돌하면서 에너지가 발생하면 이 에너지를 빛으로 전환해 관측할 수 있다. 빛으로는 관측할 수 없으니 질량을 이용하는 것이다. 다만 암흑 물질과 원자핵이 충돌할 확률이 극히 낮다는 것이 문제다.

암흑 물질은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돼 세계 각국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암흑 물질의 존재를 규명하면 노벨상을 받으리라고 본다. 유럽우주국(ESA)은 암흑 물질 탐사를 위해 10년간 14억유로(약 2조원)를 들여 개발한 유클리드 우주망원경을 지난 7월 발사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중성미자 망원경(neutrino telescope)을 적도 근처 남중국해에 구축할 계획이다. 망원경이 크면 클수록 우주에서 오는 어두운 빛을 많이 받아들일 수 있어 암흑 물질 관측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암흑 물질 관측 경쟁 무대가 지상과 우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