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 존슨이 자신이 발명한 반자동 물총 수퍼 소커를 들고 있다. NASA와 미 공군에서 첨단 기술을 연구했던 그는 이 물총 로열티로 억만장자가 됐다./존슨 리서치 앤드 디벨로프먼트

1989년 흑인 남성이 분홍색 샘소나이트 가방을 끌고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회사에 들어섰다. 잠시 뒤 회의실에서 연 가방 속에는 2리터짜리 탄산음료 병과 PVC 파이프, 고무링 등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장난감 물총이 들어 있었다. 남성이 총으로 쏘아낸 물줄기는 넓은 회의실의 반대쪽 벽을 순식간에 흠뻑 적셨고, 경영진은 곧바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장난감 가운데 하나이자, 세계인의 물놀이 필수품 ‘수퍼 소커(Super Soaker)’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물총의 가능성을 알아본 카피캣(모방품) 장난감 회사 라라미(Larami)는 1991년 한 해만 200만개의 수퍼 소커를 판매하며 기업 가치가 급성장했고 1995년 세계 최대 장난감 업체 해스브로에 인수됐다. 장난감의 신화를 쓴 이 남성의 이름은 로니 존슨(Lonnie Johnson·1949~). 첨단 스텔스 폭격기 개발과 목성 탐사선 갈릴레오 프로젝트를 이끈 미국항공우주국(NASA) 수석 과학자였다.

그래픽=이철원

◇'흑인 다빈치’ 인생의 모토 삼아

존슨은 앨라배마주 모빌에서 태어났다. 중졸인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고, 간호조무사인 어머니는 세탁소에서도 일했다. 가족은 여름에 모두 함께 농장에서 목화를 따 생활비를 조달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던 존슨의 아버지는 여섯 아이의 장난감을 직접 만들었고, 이를 옆에서 보고 자란 존슨 역시 탁월한 손재주를 갖게 됐다. 호기심도 남달랐다. 존슨은 “눕히면 눈을 감는 누나의 인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려고 칼로 찢었고, 로켓 연료를 주방 냄비에서 만들다가 폭발하면서 집을 몽땅 태워 먹을 뻔했다”고 했다.

흑인 학교 윌리엄튼 고등학교 시절 존슨은 20세기 초 가장 유명한 흑인 과학자이자 발명가 조지 워싱턴 카버에 대해 알게 된 뒤 그를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카버는 계속된 목화 재배로 지력(地力)이 다한 땅에 땅콩과 고구마를 재배하는 방법을 찾아내 빈곤층을 구해낸 영웅이었다. 1941년 타임지는 카버를 ‘흑인 다빈치’라며 특집 기사를 실었다. 1968년 앨라배마에서 열린 전미 과학 박람회에 유일한 흑인 학생으로 참가한 존슨은 압축 공기로 팔다리가 움직이는 로봇 ‘리넥스’로 1위를 차지했다. TV시리즈 ‘로스트 인 스페이스’ 속 로봇이 사람이 들어가 연기한다는 것을 알고는 진짜 로봇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지 1년 만이었다. 대학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공군 장학금과 수학 우등생 장학금을 받고 자신의 정신적 멘토 카버가 평생 몸담은 터스키기대에 진학해 기계공학 학사, 원자력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로니 존슨

◇목성 탐사선 갈릴레오 주도

첫 직장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서 존슨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출신 엔지니어들과 함께 원자로 냉각 시스템을 연구했다. 이곳에서 존슨은 스스로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MIT 출신들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는 과제들이 내 아이디어로 풀리곤 했다”면서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만들고, 벽에 부딪히면 새로운 방법을 찾던 습관이 큰 무기가 됐다”고 했다. 1975년 공군에 입대한 존슨은 원자력 우주 발사체 연구에 참여했고, 이 과정에서 우연하게 대통령 보고를 앞둔 NASA 프로젝트의 중대 오류를 찾아냈다. NASA는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있는 제트추진연구소(JPL)로 그를 불러 수석 과학자 직책을 맡겼다. 존슨은 기술 개발과 발명 모두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목성 탐사선 갈릴레오 프로젝트를 이끌던 시절에는 원자력으로 우주선을 구동하는 것부터 과학 장비·컴퓨터 같은 전력 시스템 설계를 총괄했다. 한 연구원이 우주선 전원이 나가 메모리가 지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하자, 존슨은 직접 절연 회로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1989년 발사된 갈릴레오는 목성의 대기 직접 측정, 최초의 소행성 위성 발견, 슈메이커-레비9 혜성과 목성의 충돌 관측 등 인류의 우주 개발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겼다. 이후 존슨은 혜성과 3년간 나란히 날아가며 관측하는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혜성 랑데부 프로젝트(CRAF), 보이저 1·2호를 이어 태양계 외곽을 탐사하는 마리너 마크2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지만 모두 NASA 예산 초과로 중단됐다. 이들 프로젝트에서 개발된 기술은 사장되지 않고 1997년 발사된 토성 탐사선 카시니의 토대가 됐다.

존슨은 “NASA 재직 시절 난 대부분의 회의와 연구실에서 유일한 유색 인종이었다”면서 “백인 사이에서 홀로 경쟁하는 것은 마치 물살이 거센 상류에서 계속 수영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우주개발 역사에서 숨겨진 흑인 여성들을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 같은 경험을 존슨도 했다는 것이다.

태국 물 축제 송끄란에서 참가자들이 수퍼 소커로 물놀이를 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낮에는 스텔스, 밤에는 물총 개발

1982년 전략공군사령부(SAC) 우주 시스템 부문을 담당하게 된 존슨은 에드워즈 공군기지의 비행대대에 배치됐다. ‘B2′라는 이름의 폭격기 비행 테스트 임무가 주어졌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유령 전투기, 오늘날 스텔스로 불리는 차세대 비행체 프로젝트였다. 스텔스 개발은 극비였기 때문에 존슨은 낮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퇴근한 뒤에는 발명에 매달렸다. 존슨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히트 펌프(열 펌프)였다. 일반적으로 펌프는 물 같은 유체를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보낸다. 히트 펌프는 유체 대신 열을 보내는데 냉각에 사용하는 에어컨과 냉장고, 난방에 사용하는 라디에이터, 온돌 등이 대표적이다. 존슨은 냉각용 히트 펌프에서 냉매인 프레온가스를 물로 바꿔 대기 오염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공기와 물을 압축하는 노즐을 여러 가지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계산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물줄기를 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욕실 벽에 부딪히는 물줄기에 즐거워하는 여섯 살 딸을 보자 번득이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걸로 물총을 만들면 좋은 장난감이 되겠구나”였다. 물을 매번 채우고 손잡이 부분을 쥐어짜는 고무 물총만 있던 시절에 펌프로 작동하는 고차원적 발명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존슨은 직접 물총을 생산하고 싶었지만, 공업사에서 첫 1000개를 제작하는데 현금으로 20만달러(약 2억6000만원)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는 포기했다. 공군과 JPL을 오가며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나날이 이어졌지만, 발명품 상용화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7년 뒤인 1989년 뉴욕 장난감 박람회에 밀링머신으로 직접 만든 시제품을 가져가 전시장을 돌던 중 라라미의 수석 부사장을 만났고, 이 만남이 존슨과 라라미의 운명을 바꿨다. 라라미와 이를 인수한 해스브로는 1991년부터 특허가 만료되기까지 25년간 수퍼 소커로만 1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존슨은 2022년 수퍼 소커를 발명한 공로로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억만장자 됐지만, 멈추지 않는 도전

존슨은 수퍼 소커로 억만장자가 됐다. 라라미를 인수한 해스브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존슨에게 로열티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특허 소송이 진행됐다. 법원은 해스브로에 당시까지의 판매 금액에서 7300만달러를 존슨에게 추가로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존슨은 이 돈으로 편하게 사는 대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1991년 공군을 그만두고 연구소 기업 ‘존슨 리서치 앤드 디벨로프먼트’를 차려 친환경 에너지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현재 이 회사는 엑셀라트론 솔리드 스테이트, 존슨 에너지 스토리지, 존슨 일렉트로 메커니컬 시스템스 등을 아우르는 초대형 기술그룹으로 발전했다. 열을 전기로 변환하는 열전 기술, 유리를 전해질로 사용하는 세라믹 배터리 등 200건이 넘는 특허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대부분의 연구는 존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고, 존슨은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연구소에서 직접 실험과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2009년 파퓰러 메커닉스는 존슨이 발명한 ‘존슨 서모-일렉트로케미컬 컨버터 시스템(JTEC)’을 ‘올해의 10대 발명품’으로 꼽았다. 수소가스를 압축 및 팽창해 열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이 장치는 소형 전자기기부터 대규모 발전소까지 전력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 활용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미군에서 상용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존슨은 왜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난제를 풀기 위해 수십 년간 애쓰고 있을까. “장난감이 최고의 발명품이 됐지만, 내 목표는 언제나 세상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