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마을이 태양열 패널로 전력을 공급받는 집에서 한 여성은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이웃은 태양열 그릴로 계란 프라이를 요리한다. 태양열 패널이 설치된 개집에선 강아지가 따뜻한 커피를 즐기고, 집 앞 도로에선 태양전지를 장착한 자전거가 달린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가 발간하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2024년의 획기적인 혁신기술로 ‘초효율 태양전지’를 꼽으면서 삽화로 묘사한 장면이다. 8일(현지 시각)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초효율 태양전지를 포함해 10대 혁신 기술을 선정해 발표했다.

그래픽=박상훈

◇“지열 발전으로 지하에 거대 배터리”

에너지와 관련된 기술들이 다수 선정돼 눈길을 끈다. 예컨대 초효율 태양전지는 올해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태양전지’의 효율 경쟁이 이어지며 상용화에 한 발짝 더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페로브스카이트는 빛을 투과시키면서도 전기로 바꿀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소재다. 글로벌 태양광 기업 론지는 지난해 11월 실리콘-페로브스카이트 탠덤 태양전지의 효율 33.9%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KAUST) 기록을 6개월 만에 뛰어 넘은 것이다.

땅속의 열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지열 발전도 주목해야 할 혁신 기술로 선정됐다. 미국의 지열 발전 스타트업 페르보 에너지는 지난해 네바다에서 새로운 지열 시스템을 통한 에너지 생산을 시험했다. 석유나 가스 산업에서 활용되는 수압 파쇄술을 이용해 기존보다 훨씬 깊이 땅을 팔 수 있다. 이후 깊이 자리 잡은 암석에 물을 주입해 증기를 생성하고, 이 증기로 터빈을 구동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이 발전하면 주입하는 물의 압력을 높이거나 완화해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발전량을 운영할 수 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거대한 지하 배터리를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엑사스케일 수퍼컴이 거대 난제 해결

기존 수퍼컴퓨터 성능을 뛰어넘는 엑사스케일 수퍼컴퓨터도 올해 혁신을 이끌 기술로 꼽혔다. 엑사스케일 컴퓨터는 초당 100경 회 이상의 부동 소수점 연산을 수행할 수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엑사스케일 컴퓨터는 지난해 출시된 ‘프론티어’로 노트북 10만 대에 맞먹는 연산 능력을 갖췄다. 올해는 이보다 2배 정도 빠른 두 대의 엑사스케일 컴퓨터가 등장한다.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엘 카피탄’과 아르곤 국립연구소의 ‘오로라’다. 유럽 최초의 엑사급 수퍼컴퓨터 ‘주피터’는 올해 후반 첫선을 보인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엑사스케일 컴퓨터의 발달로 과학계는 기후, 핵분열, 난기류 등에 대한 더욱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엑사스케일 컴퓨터로 은하수 안팎의 가스 흐름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후위기를 비롯해 인류의 거대 난제를 해결하는 데 엑사스케일 컴퓨터가 돌파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이 밖에도 AI, 애플비전 프로, 체중 감량 약물, 반도체 칩렛(Chiplet) 기술, 유전자 가위 치료제, 히트 펌프, 트위터 킬러 등을 올해의 혁신 기술로 꼽았다. 이 가운데 애플비전 프로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합한 ‘공간 컴퓨터’ 분야를 개척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양한 기능의 칩을 결합해 하나의 칩으로 만드는 칩렛 기술과 에어컨 등 냉난방에 활용되는 히트펌프 기술도 약진이 기대된다고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