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 도입부에는 동물들이 농장 주인을 내쫓기 위해 반란을 계획하며 토론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은 전혀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결국 당하고야 만다. 설사 주인이 동물들 모의를 엿들었다고 해도 “꼬끼오” “꿀꿀” “음메”로만 들리는 소리에 담긴 뜻을 알 순 없었을 테다.
소설 속 동물들이 반란조차 꿈꾸지 못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동물이 내는 소리를 AI(인공지능)로 분석해 뜻을 알아내는 연구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어서다. 반려견이 짖는 이유를 몰라 답답할 때 스마트폰 앱을 들이대면, 인간의 언어로 동시 통역되는 날이 올까.
◇”반려동물 동시통역 목표”
지난 2일(현지 시각) 영국왕립학회 학술지 오픈 사이언스에 인간은 닭 울음소리만 듣고도 닭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먹이를 앞둔 닭이 기대하며 우는 소리와, 반대의 경우 좌절한 닭이 우는 소리를 녹음한 파일들을 약 200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들려준 실험 결과다. 닭의 감정을 알아맞히도록 해보니, 참가자 70%가 맞혔다는 내용이다. 이 연구에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알아맞힐 수 있다”라는 등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반면 연구진은 “앞으로 AI를 활용해 닭 울음소리를 모니터링하고, 감정 상태를 사육사에게 알려주는 길을 연 것”이라며 의미 부여를 했다.
기대 이하라는 냉소적 반응이 나온 이유는 이미 한참 앞서간 연구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양이 울음소리를 통역한다는 앱 ‘미야오 톡(Meow Talk)’은 세계적으로 설치(다운로드) 건수가 2000만을 넘어섰을 정도로 인기다. 아마존의 AI 음성 인식 ‘알렉사’ 개발에 참여했던 이들이 만든 이 앱은 고양이가 내는 소리를 AI가 분석해 “배고파요” “행복해요” “화났어요” 등 사람의 언어로 나타낸다. AI가 학습한 고양이 소리 데이터는 2억6000만건이 넘는다. 앱을 통해 고양이 소리가 클라우드(가상 서버)로 전송되면 AI가 뜻을 풀어주는 방식이다. 개발사는 이 앱이 70% 정확도로 고양이 감정 상태를 읽어낸다고 주장하지만, “열 번에 아홉 번은 ‘예뻐해 주세요’ ‘사랑해요’ ‘내 사랑을 찾고 있어요’라고 나온다”는 등 불만도 있어 해석의 신뢰성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개에게 특화된 통역기 개발에 나선 스타트업도 있다. 동물 음성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창업한 줄링구아(Zoolingua)는 휴대폰으로 반려견의 표정과 동작, 소리를 촬영하면 AI가 종합적으로 분석해 동시 통역해 주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성과를 내진 못했다.
◇생성형 AI로 밀렵 악용 우려도
고양기, 개와 같은 반려동물 이외에도 다양한 동물의 감정을 읽으려는 연구는 잇따르고 있다. 앞서 2022년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진은 AI로 돼지 울음소리를 분석해 92% 정확도로 감정 상태를 파악했다고 발표했다. 돼지 411마리의 소리를 녹음한 파일 7414개를 AI로 분석한 결과, 젖을 빨 때처럼 기분이 좋을 땐 짧고 낮은 소리로 울고 두려울 땐 높은 소리를 낸다는 점 등을 확인했다. 고래와 인간의 의사소통을 추구하는 비영리단체 세티(CETI·Cetacean Translation Initiative)는 고래들의 의사소통을 로봇공학, 컴퓨터과학, 언어학, 생물학, 음향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AI를 활용해 해석하고 있다. 이 밖에 박쥐, 꿀벌, 코끼리가 내는 소리를 읽어내는 연구들도 나왔다.
AI의 발달은 동물 언어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AI가 분석한 동물의 소리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생성형 AI도 동물과 인간의 의사소통 연구에 활용되면서 머지않아 구글 번역기와 같은 동물 소리 번역기가 등장한다는 전망이다.
지난해 8월 작고한 카렌 베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동물들 의사소통을 해석하는 돌파구가 5~10년 후 열리고, 앞으로 20년 안에 종간(種間)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금과 같은 동물 소리 해석 연구로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동물과 의사소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서 “동물의 의사소통은 맥락이 달라 파악이 매우 어렵다”고 했다.
멸종 위기 동물을 보호하고 동물 복지를 위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동물 통역 연구가 오히려 야생 동물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된다는 우려도 있다. 예컨대 동물의 의사소통을 학습한 생성형 AI가 어미를 부르는 동물의 소리를 정교하게 모방하면, 밀렵에 악용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