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기업들이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수백억~수천억원을 투자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다들 사서 쓰잖아요. 기업용 인공지능(AI)도 비슷해질 겁니다.”
지난 17일 만난 윤성호 마키나락스 대표는 “ERP 시스템에서 독보적인 독일 회사 SAP처럼, AI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우리 회사를 찾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마키나락스는 2017년 설립된 산업용 AI 설루션 스타트업이다. 설계, 생산, 검증, 출하 등 제품 생산과 관련된 주요 과정 전체에 AI 도입을 지원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한다.
윤 대표는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에서 입자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삼성전자에서 병역 대체 복무를 하면서 진로를 학계에서 산업계로 틀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제조 강국이고, 또 AI 경쟁력도 높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결합된 영역에서 창업을 하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며 “초기 투자자들도 대부분 제조 기업들로 유치했고, 회사가 성장하면서 제조 분야 AI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마키나락스는 SK, 현대, LG, 한화, GS 등 전략적 투자자들 중심으로 투자를 유치해 지난해 누적 투자 유치 금액 340억원을 달성했다.
제조 분야에서 AI는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윤 대표는 “일례로 우리 제품 중 전기차에 들어간 AI가 있는데, 그 AI는 2700대가량의 차량 배터리의 수명을 실시간으로 예측한다”며 “이전에는 사람이 순차적으로 또는 임의로 테스트를 해봐야 했던 것을 효율화한 것”이라고 했다. 현재는 주로 생산 라인의 설비를 감시하거나 완제품의 상태를 점검하는 데 AI가 사용되지만 최근에는 설계 단계에 AI를 도입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그는 “반도체나 전자 제품 기판의 경우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효율에 큰 차이가 나는데 무수히 많은 조합을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반면 AI는 사전에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최적화 설계를 찾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윤 대표는 AI를 ‘인간의 뇌’, 소프트웨어를 ‘인간의 몸’에 비유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머리가 있다 해도 움직일 몸이 없으면 일할 수 없는 것처럼, 한 기업이 기업용 AI를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활용하고 유지·보수할 소프트웨어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특히 AI 구축과 소프트웨어 개발은 전혀 다른 분야이므로 둘 다 잘 만들 수 있는 기업이 정말 드물다”고 했다. 창업 초기에는 산업 장비의 이상 징후를 탐지하는 AI 구축에 집중하던 마키나락스는 최근 범용 AI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마키나락스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가 발표한 ‘2023 세계 100대 AI 기업’에 한국에 본사를 둔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제조업 AI 스타트업으로도 유일하다. 윤 대표는 “지금까지 제조 현장에 배포한 모델이 4000개가량 되는데, 모델 수가 많다 보니 개별 기업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의 유효성을 빨리 검증하고, 빠르게 AI에 적용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며 “올 연말 상장을 앞두고 제조업에서의 강점을 더욱 키우는 동시에 로보틱스와의 결합 등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탐색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