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로 사람의 생각을 읽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은 2004년 미국에서 처음 현실화됐다. 척수마비 환자 매슈 네이글은 브라운대 뇌과학자 존 도너휴가 개발한 ‘브레인게이트(BrainGate)’를 이식받아 생각으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데 성공했지만 한계가 분명했다. 동력 케이블만큼이나 굵은 전선 다발이 네이글의 두피에 있는 커넥터에서 냉장고 크기 컴퓨터까지 연결되어 있는 형태였다. 이동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생각을 잘못 읽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로 성능도 떨어졌다. 이후 수많은 과학자가 BCI에 도전했지만 여전히 학문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29일(현지 시각)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사람의 뇌에 칩을 심는 데 성공한 것을 계기로 BCI 기술이 급속히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전기차 상용화부터 우주 개발까지 불가능해 보이던 일에 뛰어들어 세상을 놀라게 한 머스크가 수년 전부터 가장 애착을 갖고 진행해 온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장애와 질병을 극복하고, 나아가 사람의 지능을 증강하겠다는 머스크의 구상은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까.
◇우울증·편두통에도 활용 가능
머스크는 뉴럴링크의 칩을 텔레파시(Telepathy)라고 부른다. 생각만으로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점이 마치 초능력 ‘텔레파시’ 같다는 것이다. 텔레파시는 동전 크기 칩에 연결된 가느다란 전선 64개로 이뤄져 있다. 전선에 부착된 전극은 모두 1024개에 이른다. 전용 수술 로봇을 이용해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운동을 관장하는 대뇌피질 영역에 기기를 심는다. 전극은 뇌에서 뉴런(신경세포)의 신호를 포착해 칩으로 전달하고,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무선으로 외부 컴퓨터에 송신된다. 칩은 무선 충전이 가능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컴퓨터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데이터에서 사용자의 의도를 분석한다. 칩을 이식한 사람은 특수한 맞춤형 훈련이 필요하다. 김영수 연세대 약대 교수는 “한 사람이 ‘일어서고 싶다’ ‘앉고 싶다’ 같은 특정한 생각을 떠올릴 때 나오는 뉴런 신호는 각각의 패턴이 있다”면서 “여러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통해 뉴런 신호를 최대한 많이 모아 분류해 두면, 나중에 같은 의도를 가졌을 때의 신호를 해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뇌에 이식한 칩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파킨슨병이나 뇌전증처럼 뇌 관련 질환을 가진 환자의 뇌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전극을 이용해 자극을 주거나 치료 물질을 분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조일주 고려대 의대 교수는 “BCI 기술은 처음에는 전신마비 환자 등에게 사용되다가 우울증, 편두통,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알츠하이머 환자로도 확대될 수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운동이나 학습 능력을 증진하는 데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기억 옮기는 기술도 가능
머스크는 BCI 기술이 발달하면 기억을 읽거나 저장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현실화될 경우 자신의 기억을 컴퓨터에 통째로 저장한 뒤, 다른 신체나 로봇 등으로 옮기면서 영생까지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뇌를 직접 수퍼컴퓨터나 AI와 연결해 초지능 같은 고도의 능력을 갖추게 하는 일까지 구상하고 있다. 그는 “뉴럴링크의 궁극적인 목표는 AI와의 공생”이라고 했다.
물론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조일주 교수는 “BCI 기술의 가장 큰 걸림돌은 안전성”이라며 “뇌에 삽입된 전극이 뇌 신경세포를 손상시켜 전극 주변으로 신경세포가 아닌 면역세포가 몰리며 뇌 신호가 갈수록 약해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뉴럴링크는 동물 실험에서도 안전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미국 민주당 의원들은 2018년 이후 원숭이, 돼지 등 실험 동물 1500여 마리가 뉴럴링크의 실험으로 죽었다고 밝혔다. 특히 칩 이식으로 젊고 건강한 원숭이 최소 12마리가 안락사됐다고 주장했다. 머스크는 “원숭이의 죽음은 칩 이식과는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의 약자로, 사람이 생각을 할 때 뇌의 신경세포(뉴런)가 내는 신호를 읽어 사용자 의도를 인식하고, 이를 통해 외부의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다. 뇌에 직접 칩과 전극을 이식하는 방식과, 헤드셋 등을 통해 두피에서 신호를 읽는 방식이 있다. 칩 이식 방식이 정확도가 훨씬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