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상장 직후 기업 가치 60억달러(약 8조원)에 육박하며 화제를 모은 미국 유전자 분석 업체 23앤드미가 상장 폐지 위험에 처했다. 23앤드미는 2007년 전용 키트에 침을 뱉어 보내면 의료 기관을 거치지 않고 암·당뇨·파킨슨병 발병 위험과 자신의 조상까지 알려주는, 혁신적인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내놓았다.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전처인 창업자 앤 워치츠키는 구글 창업 멤버이자 전 유튜브 최고경영자(CEO) 수전 워치츠키, 의대 교수인 재닛 워치츠키와 함께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똑똑한 세 자매’로 불리는 유명 인사다. 하지만 9일(현지 시각) 기준 23앤드미 주가는 62센트로 고점 대비 98% 이상 폭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나스닥은 23앤드미에 상장 폐지 경고를 한 상태다. 이 회사는 지난해 3억3500만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23앤드미의 위기는 한때 바이오 산업의 미래로 불렸던 유전자 분석 업계가 마주한 현실을 보여준다. 소프트뱅크가 투자했던 유전자 분석·치료 업체 인바이테도 자금난에 파산 신청을 준비 중이고, 나테라도 2년 연속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보고 있다.

그래픽=김현국

◇몸값 8조원 기업이 주가 ‘0달러’로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는 유전자 검사’에 대한 아이디어는 워치츠키의 공동 창업자이자 유전학 전문가 린다 어베이에게서 나왔다. 어베이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가진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은 당시 여자 친구였던 워치츠키를 소개해 줬다. 2007년 워치츠키가 어베이와 같이 창업하기로 하고, 브린과 구글이 투자하면서 23앤드미가 출범했다. 브린과 워치츠키의 유명세, 유전자 분석이라는 신기술을 앞세워 23앤드미는 1조원이 넘는 누적 투자금을 유치했다.

23앤드미는 2017~2020년 3년 사이 이용자 700만명 모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검사를 받으면 ‘자신의 인종 구성과 조상’ ‘특정 음식을 좋아하거나 냄새를 잘 맡는지’ ‘아침형 인간 혹은 올빼미인지’ ‘운동 능력은 타고났는지’ 등 당시 소셜미디어에서 화제를 모은 유전자 정보를 제공했다. 암·당뇨·알츠하이머 등 질병 발병과 유전 확률도 알려줬다.

하지만 화제성이 떨어지자 성장세가 급격히 꺾였다. 유전자 검사를 받은 누적 고객이 1000만명이 넘자, 신규 고객이 좀처럼 유입되지 않았다. 한번 유전자 검사를 받으면 추가로 서비스를 이용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23앤드미는 개인 맞춤 건강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주는 연간 구독 서비스를 내놓았지만, 가입자 수 64만명으로 회사 기대치의 절반에 그쳤다.

전문적인 연구·개발을 통한 수익 사업도 쉽지 않았다. 23앤드미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50개 이상의 신약 후보군을 발견했다”고 했다. 문제는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는 데만 수억 달러가 필요하고, 임상 시험부터 허가까지 길게는 10년까지도 걸린다는 점이다. 23앤드미는 고객 690만명의 유전자 정보를 유출해 집단소송에도 휘말려 있다.

◇또 다른 유전자 기업도 파산 위기

미국 인바이테도 파산 위기에 놓여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1조5000억원을 투자해 화제가 됐던 회사로, 정밀 유전자 분석에 특화한 기업이다. 하지만 누적 부채가 15억달러에 육박하는 데다, 수 주 안에 추가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다.

한국의 유전자 검사 시장도 성장이 지지부진하다. 국내 헬스케어 업계에 따르면, 2010년대 후반 국내 유전자 검사 시장에 20여 스타트업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업체가 사업을 접거나 폐업하고 5곳만 남았다. 시장조사 기관 모르도르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국내 유전자 검사 시장은 2023년 기준 약 988억원으로 추정된다. 헬스케어 업계 관계자는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선 ‘유전자로 찾은 내 조상 인증’이 인기였던 것과 달리,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라 이런 수요가 적어 폭발적인 성장이 없었다”며 “남은 기업들도 유전자 데이터로 고객에게 제공할 추가 서비스가 없다 보니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