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과학기술계의 가장 큰 화두는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다. 줄어든 연구비를 채우기 위해 제안서를 급하게 작성하는가 하면, 박사후 연구원(포닥) 등 비정규직 연구 인력은 급여가 줄어들거나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을 비롯한 연구 현장에서는 끊임없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연구자들은 R&D 예산 삭감이 급작스럽게 진행되면서 구체적인 방침이나 설득 과정이 없었다고 비판한다.

서울 한 사립대에서 바이오 분야 기초 연구를 하는 A 교수는 진행하던 과제 2개의 올해 연구비가 40% 삭감됐다. A 교수는 “인건비와 실험비가 부족해 포닥 두 명을 내보냈다”며 “두 명 모두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A 교수는 부족한 연구비를 메우기 위해 새로운 과제 제안서 3개를 최근 제출했다. 그는 “지금까지 연구를 하면서 3개나 제안서를 작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경쟁률이 너무 높아 여러 개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비슷한 처지의 지원자가 몰리면서 정부 과제를 지원하는 사이트인 범부처통합연구지원시스템(IRIS)은 최근 마비 사태까지 겪었다.

정부가 젊은 연구자 육성을 약속했지만, 예산 삭감의 가장 큰 타격은 이들이 입고 있다. 2022년 임용된 물리학 전공 B 교수는 1억원 규모의 연구 과제를 수주했지만 예산 삭감으로 올해 연구비가 70%나 줄어들었다. 첫 연구인만큼 연구비로 기초 장비 등을 구입해놨지만, 정작 연구를 진행할 인건비가 없는 상황이다. B 교수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김봉재 경북대 물리학과 교수와 고아라 전남대 물리학과 교수는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고에서 “R&D 예산 삭감은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에게 참을 수 없는 한계점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미 예산 삭감으로 인해 채용을 보류하거나 장비 주문을 취소하는 등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했다.

수천억원이 투입된 대형 연구도 지장을 받고 있다. 한국형 중이온 가속기 라온(RAON)과 한국형 핵융합로 K-STAR 등은 올해 가동 횟수가 대폭 줄어들 처지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 관계자는 “연구 책임자 대부분이 인건비와 연구 재료비 가운데 어느 쪽을 줄여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