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내 인공지능(AI)이 설계한 약을 병원에서 보게 될 겁니다. AI는 신약 개발에 평균 10년이 걸리는 것을 몇 달 정도로 단축할 수 있습니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모바일 박람회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24’ 기조연설에서 밝힌 예측이다. 그는 AI로 2018년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 신약 개발에 참여한 프로젝트를 예로 들면서 “기존 연구 방법으로 기본 단백질 2억 개를 모두 분석하려면 10억 년이 걸리지만, AI는 1년 만에 가능하다. 인류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구글은 최근 일라이릴리, 노바티스 등 글로벌 대형 제약사와 함께 AI 기반 신약 개발에 나섰다.
◇AI·바이오 기업 손잡고 신약 개발
AI가 본격적으로 신약 개발에 쓰이면서, 바이오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다. AI로 단백질 구조, 부작용을 예측해 신약 개발 기간과 비용을 대폭 줄이고 성공률을 높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신약 개발용 AI를 개발해 첨단 신약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단계에 돌입했다. 아미노산 서열로부터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폴드(AlphaFold)’를 신약 후보 물질에 활용하는 제약사가 급증했고,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 암젠은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내놓은 신약 개발용 AI 플랫폼 ‘바이오 니모’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AI 기업들이 제약 바이오 기업을 위해 기술을 공개하는 것은 물론, 약 3000억원 규모의 파트너십을 맺은 AI 기반 바이오텍 UNP와 제약사 머크처럼 신약 개발을 위해 손을 잡는 경우도 늘고 있다.
◇국내 제약 업계도 신약 개발 AI 구축
AI 열풍은 국내 제약 업계도 강타했다. 대웅제약은 지난달 “AI를 이용해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할 수 있는 독자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주요 화합물 8억 종의 분자 모델을 데이터로 바꿔 저장하고, 이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AI 신약 개발 시스템이다. ‘데이지’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지난 40여 년간 신약 연구를 통해 확보한 화학물질을 데이터화한 것으로, AI가 신약 후보 물질을 추리고, 부작용이 적고 안정성이 높은 구조 설계를 돕는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AI를 활용해 암세포 억제 효능을 보이는 활성 물질을 발굴하고 특허까지 가능한 ‘선도 물질’을 확보하는 데 단 6개월이 걸렸다”며 “기존 방식으론 최소 2년은 걸렸을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국내 AI 신약 개발 기업은 50여 개로 추정된다. JW중외제약의 자회사인 C&C신약연구소도 자체 AI 플랫폼 ‘클로버’와 ‘주얼리’를 운영하고 있다. JW중외제약은 올해 클로버와 주얼리를 활용해 발굴한 신약 후보 물질(표적 탈모 치료제 및 항암제)에 대한 임상 시험 시작을 기대한다. 한미약품은 올해 초 국내 바이오벤처 기업 아이젠사이언스의 AI 플랫폼을 활용한 항암 신약을 개발하기로 했다. 보령은 AI 기반 신약 개발 전문 기업인 퀀텀인텔리전스와 공동으로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 중이고, GC셀은 AI 기업 루닛과 AI를 기반으로 유방암·위암 등 고형암 치료 후보 물질을 연구 중이다.
◇“한국 AI 신약 개발, 데이터 공유 꺼려 고립”
한국 AI 신약 개발 프로젝트는 이제 출발선을 막 넘어선 단계라는 것이 업계 평가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말까지 게재된 AI 신약 관련 논문(총 3884건) 중 한국은 87건의 논문이 게재됐다. 미국이 850건으로 압도적인 1위고 중국(577건)이 그 뒤를 쫓고 있다. 한국은 스위스(7위·90건)보다 한 단계 낮은 8위였다. 국내 제약 업계 관계자는 “AI 신약 개발은 여러 기업·학계의 데이터가 공유되고 여러 기업의 기술이 융합되어야 한다”며 “하지만 한국은 아직 기업 간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 고립 현상이 여전하고, 기업 협력도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유럽연합의 AI 기반 신약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해 제약 바이오 업계와 학계가 협업하는 ‘신약 개발 가속화 프로젝트(K멜로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제 사업 참가 기업이 꾸려지는 초기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