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雪山)을 오르던 누군가가 잃어버린 셀카봉일까, 셰르파(등반 길잡이)가 버리고 간 폐호스일까. 언뜻 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사진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해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연구 결과를 발표한 외계 생명체 탐사 로봇이다. 일스(EELS)로 명명한 이 로봇은 길이 4.4m에 무게 100kg으로 48개의 액추에이터(구동 장치)가 달려 있다. 뱀처럼 기어가면서 상체를 들어올리거나, 좌우로 구르는 등 다양한 동작이 가능하다. 가파른 빙벽을 비롯해 분화구와 빙판 밑 물속까지 극한의 지형들을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또 머리 쪽에는 자율 주행차용 라이다(LiDAR)와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 이는 사람의 조종 없이 스스로 생명체를 찾아나서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NASA는 이 로봇을 어디로 보내려고 하는 것일까. NASA의 목적지는 지구에서 약 12억km 멀리 있는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다. 지름이 약 500㎞인 엔셀라두스는 표면이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고, 이 위성의 남극 얼음층 아래에는 바다가 있다. 엔셀라두스가 태양계에서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히는 이유다. 지구의 심해저 열수 분출공에 관벌레, 말미잘류, 심해 홍합류 등이 사는 것처럼 엔셀라두스 바다에 생명체가 서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2015년 무인 탐사선 카시니호가 포착한 엔셀라두스 물기둥을 분석해 전체 부피의 1.4%가 수소 분자, 0.8%가 이산화탄소였다고 밝혔다. 생명체의 에너지원이 될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확인한 것이다. 심해저에서 수소와 이산화탄소로 에너지를 얻고 부산물로 메탄을 내뿜는 메탄 세균과 같은 미생물이 엔셀라두스에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NASA가 개발 중인 로봇이 EELS다. 물기둥을 뿜어내는 엔셀라두스 표면의 좁은 구멍으로 이 로봇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지구와 거리가 멀어 실시간 원격 조종이 불가능한 이곳에 뱀처럼 생긴 자율주행 로봇을 보내 스스로 생명체를 찾도록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