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 시각) 미국 의사회 내과학회지(JAMA Internal Medicine)에 오픈AI의 챗GPT-4가 의학적인 임상 추론에서 의사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현직 의사 39명과 GPT4에 같은 환자 사례를 제공하고 진단하도록 했더니 진단의 정확도와 효율성, 근거 제시 등 평가 항목에서 AI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연구를 진행한 미국 베스 이스라엘 디코니스 메디컬 센터(BIDMC) 애덤 로드먼 박사는 “환자를 위한 의료 서비스의 질을 AI(인공지능)로 개선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의료계에서 AI 활용이 본격화되고 있다. 로봇 수술 분야에는 더 정밀한 수술을 위해 AI를 활용하는 것은 이미 보편화되고 있다. 나아가 AI를 이용한 의학 데이터 분석이나 신약 개발도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의사의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해 침범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여겨졌던 진단에도 AI가 도전하고 있다. 특히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기본적 진단은 의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일부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일각에서는 ‘AI 의사’에게 진료받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GPT4 진단, 10점 만점에 10점
BIDMC 연구진은 임상 사례 20개를 마련한 후 실험에 참가한 의사 39명에게 무작위로 1개 사례를, GPT4에는 20가지 사례를 모두 제공해 이에 대한 진단을 하도록 했다. 이들이 내놓은 진단을 ‘환자의 병력과 중요한 검사를 검토했는지’ ‘주요 문제를 해석했는지’ ‘대체 진단을 제공했는지’ 등 평가 기준에 따라 10점 만점으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 GPT4는 20개 문제의 평균 점수가 10점이었던 반면 실험에 참가한 내과 주치의 21명의 평균 점수는 9점, 레지던트 18명의 평균 점수는 8점을 기록했다. 다만 GPT4는 완전히 잘못된 진단명을 내놓는 사례도 레지던트보다 많은 한계도 있었다. 잘못된 진단의 경우 평가가 불가능해 제외함으로써 평균 점수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의료 AI 모델 연구를 진행 중인 김중희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정제되어 있는 사례에 대해서는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더 ‘그럴싸한 진단’을 내놓을 수 있다”며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진료를 한다고 생각하면 환자와 의사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의사의 진단 능력을 AI가 따라오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의료 분야에서 AI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연구들이 잇따르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관련 시장 진출도 활발하다. 구글은 올해 의료용 생성형 AI ‘메드팜2′의 공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메드팜2는 정답률 80%를 기록하며 미국 의료 면허시험(USMLE)을 통과하기도 했다. 인도의 큐어닷에이아이, 이스라엘의 에이아이닥, 네덜란드의 스크린포인트 등 기업들은 의사가 활용하는 ‘진단 보조 AI’를 표방한다. 뇌 CT 촬영 데이터, 엑스레이 촬영 데이터, 초음파 데이터 등을 분석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서비스들이다.
◇AI 진단 분야, 한국 기업도 선전
국내 기업들의 ‘AI 의학’ 진출도 활발하다. AI를 기반으로 폐 질환과 유방암 촬영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루닛은 세계 최대 의료 시장인 미국 진출에 힘을 쏟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말 미국 내 40% 이상의 유방 검진 기관 등에 진입해 있는 ‘볼파라 헬스 테크놀로지’를 인수하고 올해 본격적으로 현지 판매를 시작했다. 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은 AI 진단 보조 서비스 업체 뷰노와 뇌졸중 분야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JLK도 올해 FDA 인허가 절차를 계획 중이다.
다만 업계는 AI가 의료 전문가의 지도·감독 없이 단독으로 진단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진단의 정확도도 문제지만 민감한 의료 정보의 보안 문제나 진단 후 책임 소재 등 복잡한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AI 의사가 당신을 진료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의료 AI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꼽았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미국에서는 현재 GDP의 17%에 해당하는 연간 4조5000억달러를 의료비 지출에 사용하고 있는데, AI가 제대로 도입되면 2000억~3600억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금전적인 이점 때문에) 의료 AI가 직면한 도전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이 분명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