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달 발표할 연구·개발(R&D) 시스템 재편안에 범부처 합동 심의 내용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지금까지 부처 간 칸막이와 부처 이기주의로 인해 ‘예산 나눠 먹기’ 식으로 유사한 사업을 지원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 ‘R&D 카르텔’이라고 지적한 부분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부처가 통합 심사해 비슷한 사업을 중복 지원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제대로 된 사업에 예산을 집중 지원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현재는 R&D 예산을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에 예산을 나눠주고, 그 안에서 부처가 다시 사업을 정해 배분한다. 다른 부처가 어떤 사업을 지원하는지 알기 어려워, 비슷한 사업을 각 부처가 중복해서 지원하는 사례가 많았다. 예컨대 A 교수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 사업에서 떨어지면 이와 유사한 산업통상자원부 사업에 지원하는 식이다. 같은 분야 교수들이 미리 짜고 유사한 연구 주제를 각각 다른 부처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 과정에서 전문 브로커가 활개를 쳤다. 부처 입장에서는 본인들 예산을 늘릴 수 있어 엄격하게 이를 심의하지 않았다. 한 과학계 관계자는 “부처가 예산이라는 돈줄을 쥐고 업체들을 줄 세우면서 길들이기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부처 간 칸막이도 R&D 예산 나눠 먹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그동안 정부는 20개 과제 지원 시스템 및 연구자 정보 시스템과 17개 연구비 관리 시스템을 운영해 왔다. 시스템이 흩어져 있다 보니, 중복·유사 사업을 걸러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R&D 시스템을 통합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범부처 R&D 합동 심의의 첫 분야는 바이오가 될 전망이다. 이후 다른 분야로 적용 대상을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구체적인 통합 심의 방식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계 관계자는 “부처별로 나눠져 있던 예산을 통합 관리하고 지원하는 제도가 확실히 마련돼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 유망한 사업에 제대로 된 지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