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0일 경남 사천시 우주항공청 임시청사에서 열린 우주항공청 개청식 및 제1차 국가우주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대통령실

‘한국판 NASA(미 항공우주국)’를 표방한 우주항공청이 미국 스페이스X의 ‘팰콘9′처럼 다시 쓸 수 있는 ‘재사용 발사체’ 기술 확보에 나선다. 또 태양 관측 탐사선을 추진하고, 나로우주센터에 이어 제2 우주센터 구축에 나선다.

국가 우주위원회는 30일 경남 사천 우주항공청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포함한 우주항공청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이번 회의는 국가 우주위원회 위원장이 대통령으로 격상된 후 열린 첫 회의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우주 항로를 개척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2032년 달에 우리 탐사선을 착륙시키고 2045년 화성에 태극기를 꽂기 위한 ‘스페이스 광개토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2027년까지 우주 관련 예산을 연간 1조50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2045년까지 민간을 포함해 약 100조원의 투자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국가우주위원회는 “한강의 기적, 반도체의 기적에 이어 ‘우주의 기적’을 이뤄내겠다”고 했다.

이날 우주항공청은 외국 위성에 의존하지 않고 유사시에도 민군 겸용으로 쓸 수 있는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2035년까지 위성 8기와 지상 시스템, 사용자 수신기 등을 개발한다. 또 정찰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15㎝ 물체를 식별하는 초고해상도 위성을 개발하고, 우주 자원 채굴을 위해 소행성 탐사도 검토하기로 했다.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이날 회의에서 새로운 우주 임무로 재사용 발사체를 개발하고, 지구로부터 38만㎞ 떨어진 곳으로 태양 관측 탐사선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또 소행성 탐사를 비롯해 과거 포기했던 우주 사업들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가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 조사 폐지 방침을 밝힌 상황이어서 우주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래픽=김현국

◇500㎏ 탑재 재사용 발사체 개발

재사용 발사체는 미국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주력 발사체 ‘팰컨9′으로 상용화한 기술로, 과거에는 한 번 사용하면 끝이었던 발사체를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팰컨9의 수송 서비스 가격은 ㎏당 5000달러(약 689만원)로,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의 추정 수송 비용(kg당 4만5000달러)의 9분의 1 수준이다. 우주항공청은 고도 500㎞ 저궤도에 500㎏ 크기 위성을 실어 올릴 수 있는 재사용 발사체를 새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다섯 군데 라그랑주점 중에서 제4 라그랑주점(L4) 탐사도 추진한다. 다른 나라들이 개척하지 않은 L4로 태양 관측 탐사선을 보내 인류에 영향을 끼치는 우주 방사선을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우주항공청은 지난 2022년 예타 통과에 실패한 아포피스 소행성 탐사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아포피스는 지름이 370m인 거대 소행성으로 오는 2029년 지구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주 선진국들은 인류에게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는 소행성을 파악하는 차원에서 각각 소행성 탐사를 시도하고 있다. 실제로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22년 지구에서 1100만㎞ 떨어진 소행성 디모르포스에 다트(DART) 탐사선을 충돌시키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제2우주센터 추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 민간 로켓 발사장을 만들고, 다른 지역에 제2 우주센터를 구축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다만 구체적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노경원 우주항공청 차장은 “육상, 해상 등 다양한 발사 입지를 고려해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항공 분야에서는 하이브리드 미래 항공 모빌리티(AAM) 개발과 상용화에 나서고, 군용기와 무인기도 민수화를 추진한다.

우주항공청은 민간 우주 기업 육성을 위해 2023년부터 조성한 정부·민간 매칭 우주펀드를 2027년까지 2배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과학계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부·국방부 등에 흩어져 있던 우주 사업이 우주항공청 출범을 계기로 보다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추진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우주항공청이 대표성을 가지고 국제 우주 협력 사업에 적극 참여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8일 빌 넬슨 NASA 국장은 X(옛 트위터) 계정에 “한국 우주항공청 개청은 우주 접근성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인류의 거대한 도약이고, 미국과 한국은 우주의 바다를 함께 항해할 것”이라며 축하 메시지를 올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주항공청이 출범한 5월 27일을 국가기념일인 ‘우주항공의 날’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우주항공청은 구체적인 로드맵을 올 하반기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창진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재사용 발사체 개발, 소행성 탐사 등 우주 사업은 큰 비용이 드는 만큼 국가 차원에서 어떤 이점이 있는지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