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요정 굴뚝새 수컷(왼쪽)이 자신보다 몸집이 큰 청동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고 있다. 뻐꾸기는 굴뚝새 둥지에 알을 낳고 양육을 맡기는 탁란을 했다./호주 국립대

김동인은 1932년 단편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를 발표했다. 소설에 나오는 M은 성병에 걸려 생식능력을 잃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 M은 자기 자식일 리 없음에도 아기가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핏줄이라 우겼다. 그래도 닮은 구석이 영 보이지 않자 아기의 양말을 벗기더니 발가락이 자신과 똑 닮았다고 했다.

뻐꾸기 알을 잘못 키운 새는 어떨까. M이야 닮은 구석을 찾아 정을 붙이려 했지만, 새는 끝까지 속을 수밖에 없다. 겉모습이 다르다면 바로 둥지에서 몰아내지만, 뻐꾸기도 그에 맞서 자기 알을 양부모가 될 새의 알과 흡사하게 바꿨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도 마찬가지다. 속임수가 치밀하다 보니 나중에 아예 새로운 종(種)으로 진화할 정도다. 주인집 둥지에 숨어든 ‘기생충’ 뻐꾸기는 어떻게 될까.

자기보다 몸집이 훨씬 큰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개개비./Lin hillside

◇남의 집 아이 얼굴 흉내, 양육 떠맡겨

뻐꾸기는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 탁란(托卵)이다. 그러고는 원래 있던 알 하나를 둥지 밖으로 던진다. 둥지 주인은 개수가 변하지 않아 모두 자기 알이라고 생각하고 품는다. 나중에 알을 깨고 나온 뻐꾸기는 남은 알을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어미 새는 자기 알을 모두 잃은 것도 모르고 뻐꾸기 새끼를 대신 키운다.

호주 국립대 생물학과의 나오미 랭모어(Naomi Langmore) 교수 연구진은 지난달 31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남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와 둥지를 뺏기는 숙주 새 사이에 속이고 적발하는 군비 경쟁이 벌어지며 새로운 뻐꾸기 종이 생겨난다”고 밝혔다.

호주에 사는 청동 뻐꾸기도 몸집이 훨씬 작은 파리잡이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 뻐꾸기가 자꾸 양육을 떠맡기자 둥지 주인은 알 개수는 물론, 나중에 알에서 깨어난 새끼의 생김새까지 따져 핏줄을 가리기 시작했다. 파리잡이새는 외모가 다르면 바로 어린 새를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파리잡이새의 단속이 심해지자 뻐꾸기가 주인집 자식과 생김새가 비슷할수록 탁란에 성공한는 확률이 높아졌다. 탁란한 둥지의 새끼가 노란색이면 그 둥지에 온 뻐꾸기 새끼도 노란색이었다. 알에서 깬 어린 새가 처음에 털이 거의 없으면 둥지에 기생하는 뻐꾸기도 그랬다.

연구진은 20년 동안 숲에서 벌이지는 탁란을 관찰하면서 동시에 박물관에 보관된 알에서 DNA를 채취해 분석했다. 그 결과 탁란을 당한 새가 생김새를 많이 따질수록 뻐꾸기 새끼도 숙주 새끼와 비슷한 모습으로 진화한 것으로 밝혀졌다. 숙주가 치밀해지자 기생하는 뻐꾸기의 속임수도 정교해진 것이다.

연구진은 “호주 북서부 퀸즐랜드주에서 청동 뻐꾸기가 큰부리파리잡이새와 요정파리잡이새에 모두 탁란하는데, 여기서 뻐꾸기가 유전적으로 두 개의 아종(亞種)으로 진화했다”고 밝혔다. 남의 집에 숨어들어온 ‘기생충’ 아이가 살기 위해 그 집 아이들을 따라 하다가 이전과 다른 아이가 된 셈이다.

알을 깨고 나온 뻐꾸기 새끼(왼쪽)와 둥지 주인의 새끼(오른쪽). 숙주 새가 생김새가 다른 뻐꾸기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그러자 뻐꾸기는 숙주 새끼의 생김새와 비슷하게 진화했다./호주 국립대

◇뻐꾸기 알 바꿔치기, 안 통하는 숙주도

숲에 사는 새들 사이에서 위조와 식별 기술이 창과 방패처럼 싸운다. 탁란하는 뻐꾸기나 강제로 육아를 떠맡는 숙주가 나중에 어떤 무기를 내놓을지 모른다. 호주 국립대 랭모어 교수는 “숙주 새의 방어와 뻐꾸기의 대응이 마치 군비 경쟁처럼 함께 진화한다”고 설명했다.

숲속의 군비 경쟁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의 클레어 스포티스우드(Claire Spottiswoode)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국제 학술지 ‘영국 왕립학회보 B’에 아프리카 잠비아에 사는 새는 뻐꾸기가 둥지에 몰래 낳고 간 알을 표면의 무늬로 식별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잠비아에 사는 아프리카 갈래꼬리순금도 뻐꾸기가 탁란하는 새이다. 하지만 이 새는 다른 새처럼 앉아서 당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갈래꼬리순금은 알에 있는 무늬를 사람의 지문(指紋)처럼 구별해 아프리카 뻐꾸기가 둥지에 몰래 낳은 알을 94% 정확도로 골라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케이프타운대 연구진은 잠비아 남부의 숲에 있는 갈래꼬리순금 둥지에서 알 192개를 수집했다. 그중 26개는 뻐꾸기가 낳은 알이었다. 두 새의 알은 색깔이나 무늬, 크기, 모양이 흡사해 컴퓨터 이미지 분석 프로그램으로도 구분할 수 없었다.

연구진은 갈래꼬리순금이 자신의 알과 가짜 알을 얼마나 잘 가려내는지 알아보기 위해 둥지의 알을 바꿔치기하는 실험을 했다. 의도적으로 비슷한 모양의 알을 골라 바꿨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에서도 암컷 갈래꼬리순금은 바꿔치기한 알 114개 중 76개를 거부했다. 탁란 성공률이 33%에 불과한 것이다.

실험 결과를 토대로 실제 자연환경에서 갈래꼬리순금이 뻐꾸기 알을 얼마나 잘 가려낼 수 있는 예측하는 컴퓨터 모델을 만들었다. 1000번 시뮬레이션(모의실험) 결과, 갈래꼬리순금 둥지에 낳은 뻐꾸기 알 중 6.3%만 탁란에 성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예측이 정확하다면 아프리카 뻐꾸기가 평생 낳는 알 개수를 생각할 때 단 두 마리만 살 수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알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아프리카갈래꼬리순금(왼쪽)과 아프리카뻐꾸기. 갈래꼬리순금은 자기 둥지에 몰래 낳은 뻐꾸기 알을 94% 정확도로 찾아내는 것으로 밝혀졌다./위키미디어

◇개개비는 뻐꾸기 탁란 막으려 집단행동

적과 싸우려면 무기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몸으로 버틸 때도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2009년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롤로지’에 탁란에 희생되는 새가 뻐꾸기보다 몸집이 작지만 자기 알을 지키기 위해 집단 행동을 한다고 발표했다. 케임브리지대 주변 숲에 사는 개개비(reed warbler)는 뻐꾸기가 접근하면 떼를 지어 공격했다.

뻐꾸기와 개개비 역시 군비 경쟁을 해왔다. 뻐꾸기는 개개비를 잡아먹는 새매와 비슷한 생김새를 만들어 개개비의 방어 의지를 꺾었다. 그러자 개개비는 뻐꾸기 알을 골라내는 법을 터득해 둥지 밖으로 밀어냈다. 다시 뻐꾸기는 자신의 알을 개개비의 알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연구진은 개개비에게 남은 것은 집단 행동뿐이라고 생각했다. 개개비 둥지 근처에 모형 뻐꾸기를 두고 관찰했다. 그 결과 절반의 개개비는 모형 뻐꾸기를 보고 일제히 몰려들어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떼지어 공격하는 개개비의 둥지는 가만있는 동료보다 뻐꾸기의 알이 적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 셈이다.

호주에선 기생충 뻐꾸기가 이겼고, 아프리카에선 주인집 새가 이겼다. 영국에선 아직 치고박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어디에서 누가 이길지 기생충 후속편이 기다려진다.

참고 자료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j3210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2023), DOI: https://doi.org/10.1098/rspb.2023.1125

Current Biology(2009), DOI: https://doi.org/10.1016/j.cub.2008.12.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