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세계 말라리아의 날인 4월 25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채집한 모기를 분류하고 있는 모습. /뉴스1

한낮 기온이 섭씨 35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일찍 찾아온 가운데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말라리아 감염 환자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때 이른 더위로 모기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환자가 예년보다 크게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19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현재 기준 국내 말라리아 감염 환자 수는 147명으로 신고됐다. 국내 말라리아 환자 수는 2021년 294명에서 2022년 420명, 2023년 747명으로 최근 계속 늘고 있다.

말라리아는 원충(열원충)에 감염된 얼룩날개모기에 물려 감염되는 질환으로, 발열과 오한, 빈혈, 구토, 설사 등이 증상으로 나타난다. 대부분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같은 열대 지역에서 발생한다. 한국은 1979년 말라리아가 박멸됐다고 선언했지만, 최근 국내에서 다시 환자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말라리아 감염이 도심 지역에서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전에는 경기 파주시, 인천 강화군, 강원 철원군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으나 최근에는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 말라리아퇴치사업 연구과제를 수행 중인 김종헌 성균관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지난해부터 말라리아 위험 국가 여행력이 없는데 서울 시내, 경기 남부에서 감염된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말라리아가 증가한 것은 이상 기후, 기온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온이 오르면서 질병의 매개가 되는 모기가 늘어나고, 이에 감염 환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무더위가 빨리 찾아오면서 올해 말라리아 주의보 발령도 전년보다 한 주 빨랐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폭염주의보는 작년보다 일주일 빨랐고 열대야는 18일 일찍 찾아왔는데, 질병관리청은 지난 18일 전국에 이를 발령했다. 지난 6월 2~8일(23주차)에 말라리아 위험 지역(서울, 인천, 경기, 강원)에서 채집한 말라리아 매개모기가 3개 시·군 이상에서 늘어 주의보 기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말라리아 위험지역의 23주차 최고 기온이 27.3도, 평년과 전년과 비교해 약 2도 높아 모기의 활동이 다소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재갑 교수는 “최근 말라리아 환자가 늘고 있는 만큼, 하루 걸러 발열이 발생하면 말라리아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말라리아는 전문의약품인 항말라리아 치료제로 충분히 치료된다. 치료법은 추정 감염지와 환자 임상 소견에 따라 다르다. 말라리아의 한 종류인 삼일열 말라리아는 원충 치료와 재발 방지를 위해 ‘클로르퀸’ 3일 요법 후 ‘프리마퀸’을 14일간 복용한다. 클로르퀸에 내성이 있는 삼일열 말라리아는 ‘메플로킨’을 최대 1000㎎ 투여한다. 항말라리아 치료제를 제조·판매하는 국내 제약사는 신풍제약, 유나이티드제약, 명인제약이 있다.

말라리아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증상이 재발할 수 있으며, 혈액 전파 위험이 있어 헌혈을 해서는 안 된다. 말라리아 예방 백신도 있으나 사망률이 높은 아프리카 지역 소아 대상으로 접종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말라리아 백신의 예방 효과가 크지는 않아 유일한 예방법은 말라리아 매개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재갑 교수는 “이제 한국도 말라리아를 잠재적인 위험으로만 간주해서는 안 된다”며 “방역체계를 한층 강화하고, 말라리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