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주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장은 20일 오후 충북 청주시에 있는 애니젠 오송공장을 방문하고 합성 펩타이드 개발 업체 15곳과 간담회를 가졌다. 합성 펩타이드는 단백질 구성성분인 아미노산을 2~50개 연결한 화학합성 원료를 뜻한다. 최근 비만 치료제로 전 세계를 휩쓴 위고비(성분명 세미글루타이드)와 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퍼타이드)가 합성 펩타이드다.
위고비와 젭바운드가 비만 시장을 휩쓸면서, 이들 의약품의 주성분인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개발과 생산 능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허가 만료되면 전 세계에서 복제약 개발 경쟁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사 성분의 신약 개발도 활발하다. 규제 당국도 지원에 나섰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관계자는 “최근 유럽에서 준비 중인 합성 펩타이드 의약품 가이드라인을 국내에 적용할 수 있을지 논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평가원은 최근 합성 펩타이드 의약품 개발 지원과 관련한 소분과도 만들었다.
◇국내 제약사도 위고비 방식 비만 치료제 개발
국내 허가된 합성 펩타이드 의약품은 동아에스티의 골다공증 치료제인 테라본과 미국 일라이 릴리의 당뇨병·비만 치료제인 마운자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 정도지만, 신약 개발 경쟁은 치열하다. 식약처에 따르면 합성 펩타이드 의약품으로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은 곳은 27개다. 임상 3상 시험도 11건에 이른다.
한미약품, HK이노엔, 동아에스티 등이 개발하는 비만 주사제 후보물질이 대표적이다. 가장 앞선 곳은 한미약품이다. 이 회사의 GLP-1 유사체 기반의 비만 치료제는 임상 3상 시험 중이다. 한미약품은 GLP-1, GIP(위 억제 펩타이드), GCG(글루카곤)에 동시에 작용하는 비만치료제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임상 1상 시험 승인을 받았다.
GIP는 GLP-1 수용체 작용제의 이점을 높이는 한편, 메스꺼움과 구토, 설사 같은 GLP-1 작용제의 위장관 부작용을 완화하는 기능을 한다. 글루카곤은 포만감 조절과 함께 에너지 소비·지질 대사 조절에도 관여한다. 한미약품은 이 세 가지를 적절히 활용하면 비만뿐 아니라 제2형 당뇨병·심혈관질환에 대한 치료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HK이노엔은 중국 제약사로부터 GLP-1 유사제 후보물질인 에크노글루타이드의 국내 판권을 확보하고 국내 임상 3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GLP-1 수용체와 글루카곤 수용체에 동시 작용하는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 1상 시험을 마치고 결과 확인을 앞두고 있다.
◇바이오와 케미컬 중간, 국내 생산기반도 있어
의약계에서는 합성 펩타이드를 경계성복합제제(NBCD)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의약품은 크게 항체 같은 인체 단백질 기반의 ‘바이오 의약품’과 화학합성 방식의 ‘케미칼 의약품’으로 구분하는데, 합성 펩타이드는 그 중간쯤 있는 새로운 의약품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주력으로 하는 바이오 의약품은 단백질 의약품이라고 부른다. 단백질의 설계도인 DNA를 박테리아나 효모, 동물 세포에 넣어 배양해 생산한다. 이 같은 생물학적 공정을 통해 생산하는 의약품은 하나의 단백질이 단위가 된다.
바이오 의약품이 단백질 덩어리를 만든다면, 합성 펩타이드 의약품은 짧은 사슬을 조립한 형태이다. 펩타이드는 단백질 기능을 가진 최소 단위를 뜻한다. 단백질의 구성 요소인 아미노산이 2~50개 정도 연결된 구조이기 때문이다. 합성 펩타이드 의약품은 아미노산을 하나씩 연결하는 화학적 합성 방식으로 만든다.
펩타이드는 단백질 자체를 활용하는 바이오 의약품보다 단위가 작으니 생산 시설이 크지 않아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아미노산을 조립 하는 방식이니 비교적 일정한 품질과 순도를 유지할 수 있다. 합성 과정에서 특정한 아미노산 서열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어 설계도만 있다면 복제약 생산도 어렵지 않다. 케미칼 의약품 강국으로 통하는 인도와 중국이 GLP-1 기반의 비만 치료제 복제약 개발에 빠르게 착수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합성 펩타이드는 단백질보다 작은 단위라 약효가 빠르고, 우리 몸에 원래 있는 것을 모방한 것이니 보다 안전하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분자 단위에서 합성하는 합성 의약품(케미칼 의약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생산 방식은 합성(조립)하는 형태이지만, 펩타이드 자체는 생체 물질에 해당한다. 단순히 물리화학적 특성 규명 방법으로 규정하기 어렵고, 제조 과정에 따라 구조, 품질, 약효 등이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식약처는 합성 펩타이드 신약 허가 관리를 위해 NBCD의 중장기 안전관리체계 로드맵을 짰다.
이번에 평가원이 방문한 애니젠은 합성 펩타이드를 개발 생산하는 업체다. 합성 펩타이드 원료를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국내에서 이 곳이 유일하다. 하지만 평가원 관계자는 다른 국내 제약사들도 언제든 합성 펩타이드 생산을 할 수 있는 역량이 갖췄다고 했다. 합성 펩타이드인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동아에스티나 한미약품이 대표적인 예다. 평가원 관계자는 “합성 펩타이드 의약품이 쏟아질 텐데,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기보다 국산 제품을 개발해서 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