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 세대(30년) 전만 해도 세계 과학계가 변방국으로 여겼던 중국의 ‘과학 굴기(崛起·우뚝 일어섬)’는 가공할 속도다. 과학 연구 역량을 평가하는 대표 지표로 꼽히는 ‘네이처 인덱스’ 순위에서 중국이 올해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과학 논문 성과는 향후 상용화할 과학기술의 선행 지표라는 점에서 현재 인공지능(AI)·반도체를 놓고 벌이는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호락호락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각 분야 최상위 中... 과학 강국 입지
과학 학술지 ‘네이처’를 발간하는 스프링거 네이처는 지난 18일(현지 시각) 최상위 학술지에 게재되는 과학 논문 수와 영향력 등을 바탕으로 국가별·기관별 순위를 매긴 ‘2024 네이처 인덱스’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각 분야 최상위급 학술지 145종에 실린 논문 7만5707편을 분석한 것으로, 과학 연구 수준을 평가하는 세계적 공신력을 갖춘 지표로 꼽힌다.
중국은 종합 순위에서 올해 처음으로 미국을 누르고 선두가 됐다. 지난해 중국은 물리, 화학 등 자연과학 분야는 최고였지만 생명과학과 보건의학을 포함한 전체 순위에선 총점이 미국보다 낮았는데, 이번 집계에서 명실상부한 1위가 됐다. 중국·미국 다음으로는 독일(3위), 영국(4위), 일본(5위)이었고, 한국은 작년과 같은 8위로 집계됐다. 인도는 작년보다 두 계단 올라 9위를 기록했다.
이전에는 중국 과학 논문은 출간 편수만 많고 수준은 떨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최상위 논문을 대상으로 한 ‘네이처 인덱스’에서 종합 1위에 오르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진정한 과학 강국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학술 정보 분석 기업 클래리베이트 집계에 따르면, 2003년 미국은 상위 과학 논문 점유율이 중국의 20배에 달했는데 10년 후에는 그 차이가 4배로 줄었고, 가장 최근 집계인 2022년에는 중국의 상위 논문 점유율이 미국과 유럽연합(EU)을 합한 것보다 커졌다. 이번 네이처 인덱스에서도 중국과학원이 최고 연구기관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최상위 대학·기관 10곳 중에서 7곳이 중국 기관으로 집계됐다. 반면 한국은 50위 안에 들어간 대학·기관이 하나도 없다.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은 서울대로 59위다. 500위 안에 든 한국 대학과 연구기관은 총 10곳에 불과하다.
◇양자·우주 등 최첨단 기술로 결실
중국의 과학 연구 역량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전 공학, 양자 기술, 우주 탐사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2018년 중국과학원은 영장류 동물로는 최초로 원숭이 복제에 성공했다. 중국은 유전체 분석 기술도 최상위 수준으로 올라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양자 통신과 양자컴퓨터 등 양자 기술 분야에서도 세계 정상급으로 평가받는다. 또 지름 500m의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 ‘톈옌’을 4년 전부터 가동 중인 데 이어, 2022년에는 자동 조종 전파망원경을 건설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2027년에는 길이 100㎞ 규모의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를 착공한다.
단기간에 급성장한 중국 과학은 예산과 장비, 인적 자원에 대한 집중 투자로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올해 과학기술 예산으로 71조원을 투입해 1년 전보다 10% 확대했다. 연구와 실험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것이다. 2000년 대비 R&D 액수는 16배 증가한 상태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올 초에도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중국 정부의 과학 기술 투자는 강화하는 추세다. 특히 세계적 수준의 대학과 정부 기관을 설립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역점 추진해 중국 대학은 매년 140만명 이상의 공학도 졸업생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