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스위스 제약업체 노바티스가 개발한 전립선암 치료 의약품 ‘플루빅토’를 허가했다. 플루빅토는 전립선암에 많이 발현되는 ‘전립선 특이막 항원(PSMA)’에 방사성 동위원소인 루테튬-177을 결합시켜 암 세포를 없애는 ‘방사성 의약품’이다. 암세포에 직접 치료용 방사성 물질을 보내 암을 파괴하는 것이다. 플루빅토는 202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고, 지난해에는 매출 9억8000만달러(약 1조3600억원)를 기록한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별다른 치료법이 없던 전이성 전립선암을 치료하는 표준 치료제로 자리 잡았다.
차세대 항암제로 꼽히는 ‘방사성 의약품’ 개발을 위한 세계 제약 바이오 업계의 경쟁이 치열하다. 방사성 의약품은 특정 암 종양에만 들러붙는 물질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탑재해 암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의약품이다. 암 세포만 피폭시켜 암을 치료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특정 질환을 진단하는 방사성 의약품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암 치료제 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프레시디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방사성 의약품 시장은 2022년 52억달러(약 7조원) 규모에서 10년간 연평균 10.2% 성장해 137억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 개발 경쟁
방사성 의약품은 합성 의약품, 바이오 의약품에 이은 ‘3세대 약품’으로 주목받는다. 방사성 물질을 체내에 직접 투입하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기존 의약품보다 월등히 높다. 방사성 동위원소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도 치료용의 경우는 1주일~1개월, 진단용은 수 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반복 복용으로 약효가 떨어지는 약물 내성(耐性)이 강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이 분야에서 제일 앞서가는 기업은 노바티스다. FDA가 허가한 방사성 의약품 3종 중 2종이 노바티스 치료제다. 앞서 노바티스는 2017년 프랑스의 ‘어드밴스드 액셀러레이터 애플리케이션스’를 38억달러에 사들였고, 이듬해에는 미국의 ‘엔도사이트’를 21억달러에 인수했다. 이 기업들의 방사성 의약품 기술을 활용한 노바티스는 2018년 신경내분비 종양 치료제 ‘루타테라’와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 개발에 성공했고, FDA 허가를 받았다.
다른 글로벌 빅파마(big pharma·대형 제약사)들도 관련 업체들을 인수하면서 방사성 의약품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일라이릴리는 지난해 10월 ‘포인트바이오파마’를 14억달러에 사들이면서 방사성 의약품 파이프라인(신약 연구 개발 프로젝트)을 강화했고, 액티스 온콜로지와도 11억6000만달러 규모의 방사성 의약품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전립선암 치료제를 출시해 노바티스의 플루빅토와 경쟁하는 한편, 다양한 질병을 표적하는 방사성 의약품을 개발하겠다는 포석이다. 지난해 12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은 방사성 의약품 개발 회사 ‘레이즈바이오’를 41억달러에 인수했다. 코로나 백신으로 유명한 아스트라제네카도 지난 3월 캐나다 ‘퓨전 파마슈티컬스’를 24억달러에 사들이고 방사성 의약품을 개발 중이다.
◇국내 바이오텍과 정부도 전략 수립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들도 진단과 치료 분야에서 방사성 의약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바이오팜은 방사성 의약품을 신사업 동력으로 선정해 3년 내에 임상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웠고, 동아에스티도 계열사인 앱티스를 통해 방사성 의약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퓨쳐켐 역시 전립선암 치료제 후보 물질에 대해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듀켐바이오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위한 방사성 의약품 수요가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도 방사성 의약품 기업 및 유관 기관 등과 지원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이미 글로벌 빅파마들은 전문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며 “국내에도 진단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방사성 의약품 업체가 있는 만큼, 빠르게 생태계를 키워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했다.
☞방사성 의약품
특정 암 종양에만 들러붙는 물질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탑재해 암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의약품. 환자 몸속에 투여하면 암세포에만 방사선을 내보내 암 조직을 파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