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내쉬는 숨으로 전기가 생산돼 전등을 밝히고 냉난방도 하는 날이 머지않아 올 전망이다. 포스텍 화학공학과 전상민 교수 연구팀은 ‘수분 구동 발전기’의 전력과 전류 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 학술지 ‘에너지와 환경과학’을 통해 최근 밝혔다. 수분 구동 발전기는 공기나 사람의 날숨에 포함된 수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다. 획기적이지만 전력 출력값이 낮아 실생활에 필요한 전기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포스텍 연구팀은 철과 시안화물이 결합한 ‘베를린 그린’이라는 물질을 활성 물질로 사용해 전력 출력값을 높였다. 1.2V의 전압과 2.8mA/㎠의 전류 밀도를 나타내 기존보다 전압은 2배, 전류 밀도는 10배 향상시켰다. 조명 램프, 전자계산기를 작동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한 것이다. 전상민 교수는 “날숨으로 생성된 전기를 이용해 중환자나 근로자의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마스크를 올해 안에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후에는 눈물로 전원을 공급하는 스마트 렌즈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일상에서 흔히 버려지는 에너지를 모아 전기를 만드는 ‘에너지 하베스팅(수확)’ 기술이 현실화하고 있다. 자연환경, 생산 공정에서는 진동이나 열, 빛, 전파 등 각종 에너지가 발생되지만 너무 미량이라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무시되는 에너지를 모아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세계 곳곳에서 개발되고 있다. 최근 에너지 하베스팅의 효율을 높이는 연구가 잇따르면서, 웨어러블(입는) 기기나 사물인터넷 기기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버려지는 에너지 재활용
고승환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2차원 나노 소재인 ‘맥신’을 이용해 에너지 하베스팅 효율을 높였다. 맥신은 태양광을 흡수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를 통해 물 이온의 움직임을 통한 전력 생산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스포이드로 소금물 3방울만 떨어뜨려도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이 켜지는 수준이다. 연구팀은 바다에 띄워 주변 환경을 감지하는 ‘스마트 부표’를 만들었다. 고승환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바다가 워낙 넓다 보니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며 “이 부표는 별도의 전원 공급이 필요 없어 해수의 온도와 소금 농도, 파고(波高) 등을 장시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진동 에너지를 증폭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김미소 박사 연구팀은 내부로 들어온 미세한 진동을 가두고 축적해 45배 이상 증폭시키는 ‘메타물질’을 개발했다. 메타물질은 빛의 경로를 반대로 굴절시키거나, 빛의 파장보다 작은 미세 입자를 만드는 등 인위적으로 설계해 만든 신소재다. 연구팀이 개발한 물질은 성인 손바닥 크기로, 진동이 발생하는 곳에 붙여서 고층 빌딩이나 교량의 손상을 점검하는 진단 센서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전자기장 역시 수확 대상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은 전선 주위에서 생성된 자기장에서 에너지를 수확해 온도와 에너지 흐름을 감지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선박 엔진 등 접근이 어려운 장소에서 기기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도 도전장
국내 스타트업들도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이용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2020년 한양대 실험실 기업으로 창업된 휴젝트는 땅에 발을 내딛는 사람의 무게나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하중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압전 기술을 상용화했다. 밟으면 빛이 나는 ‘에너지 블록’, 방지턱을 밟으면 바닥 신호등이 구동되는 ‘에너지 방지턱’ 등이 주요 제품이다. 스타트업 ‘더감’은 전기차 주행 중에 손실되는 에너지를 회수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에너지 하베스팅을 활용해 통전(通電) 여부를 알려주는 기술을 개발한 한국전기연구원 배준한 박사는 “IoT(사물인터넷)가 확산하면 각종 기기의 안정적 전원 공급을 위해서도 자가발전을 할 수 있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은 점차 더 각광받을 것”이라며 “재료 개발을 통해 생산 효율을 더 높이면 활용 분야가 계속해서 넓어질 수 있다”고 했다.
☞에너지 하베스팅
일상생활에서 버려지는 진동이나 열, 빛 등의 에너지를 ‘수확’해 전기를 만드는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