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17일 대전 유성구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를 방문해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번에 선도형 연구·개발(R&D)로 체질 개선한다고 밝힌 정부는 내년 3조4000억원을 인공지능(AI)-반도체, 첨단 바이오, 양자 기술 등 ‘3대 게임 체인저’ 기술에 투입하기로 했다. 기초연구는 올해 대비 11.6% 증액해 역대 최대 규모로 2조9400억원을 배정했다. 실패 위험이 크더라도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혁신·도전형 R&D’와 우주 분야에 각각 1조원을 투자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예산이 제대로 쓰이기 위해서는 R&D 시스템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초 정책 방향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R&D 시스템 효율화와 연구비를 갉아먹는 ‘카르텔’ 문제도 R&D 예산 삭감 논란에 묻혀 제대로 다루지조차 못했다.

먼저 R&D 전 과정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형숙 한양대 교수는 “R&D 시스템을 디지털 플랫폼화해 전 과정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면 나눠 먹기 등 카르텔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복되는 연구도 막을 수 있고, 중간에 실패하더라도 이 과정을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면 후속 연구들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R&D 시스템의 효율화도 과학기술계의 요구 사항이다. 필요한 곳에 제대로 지원하도록 돕자는 것이다. 박찬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박사는 “특허 건수 같은 양적인 부분을 채우려다 보니 연구자들이 진짜 연구보다 사업 기획과 관리에 시간을 쏟는 경우가 많다”며 “연구 행정을 덜 수 있는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바뀐 제도에 맞춰 생기는 또 다른 행정 절차는 연구자들에게는 규제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연구 수월성 확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폐지가 대표적인 개선책으로 꼽힌다. 지난 16년간 총 사업비 500억원 규모의 대형 사업의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했다. 심사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형식적인 평가에 집중하다 보니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예타 심사를 받지 않기 위해 사업 규모를 쪼개는 일이 반복됐다. 박찬수 박사는 “기초과학 같은 경우는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사업성과 공공성을 평가할 때 일관적인 기준이 아닌 연구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예산은 상황에 따라 증감할 수 있지만, 명확한 원칙에 따라 예산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