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하원이 ‘바이오 보안법(Biosecure Act)’을 발의해 제약 및 바이오 분야에서도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중국의 대표적인 위탁생산개발(CDMO) 및 임상시험수탁(CRO) 기업인 우시바이오로직스와 우시앱텍에 대한 규제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이오 보안법은 미국 의회가 지목한 중국 바이오 기업들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법안으로, 우시바이오로직스와 우시앱텍, 유전체분석 서비스 기업인 BCI 등이 규제 대상으로 명시돼 지난달 15일 미국 하원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바이오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이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계속되는 中 제약·바이오 견제
최근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 11일 열린 미국 하원 규칙위원회에서 바이오 보안법은 국방수권법 개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국방수권법은 미국의 안보와 국방 정책, 국방 예산과 지출을 총괄적으로 다루는 법으로, 1961년 제정 이래 매년 개정안이 미국 의회에서 가결돼 대통령 승인을 받고 있다. 바이오 보안법이 국방수권법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게 됐지만, 미 상원이 단독으로 바이오 보안법을 처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중국 바이오 기업들의 로비가 잇따랐다고 전했다.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지난달 15일 하원 상임위에서 바이오 보안법안이 찬성 40 대 반대 1로 통과되자, 우시앱택의 리처드 코넬 미국 및 유럽 대표를 포함한 임원진이 워싱턴DC로 급파됐다”고 전했다. 우시바이오로직스도 수석부사장인 윌리엄 에이치슨 등을 로비스트로 등록해 자사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 바이오기업을 견제해야 한다는 미국 정부 의견이 강해 바이오 보안법이 올해 안에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바이오협회는 “바이오 보안법안이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어 향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이 중국의 신약 출시도 견제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18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독일 바이오앤테크의 항암 치료제 신약에 대한 임상 2상 시험을 중단시켰다. 이번에 임상이 중단된 신약은 중국 바이오기업인 메디링크로부터 최대 10억달러(약 1조3900억원)에 이르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기술 이전 받은 물질이다. 블룸버그는 “바이오앤테크과 메디링크의 협력은 중국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유럽 제약사들의 여러 계약 중 하나”라고 했다.
실제로 중국 의약품들은 세계 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맥을 못 추는 상황이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팜큐브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FDA 승인을 받은 중국 신약은 3건에 불과했다. 승인 신청을 한 중국 신약의 1%만 통과된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은 바이오 산업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바이오협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124사 중 79%가 중국에 기반을 둔 제조업체와 최소 1개 이상의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응답 기업의 74%는 전임상 및 임상을 위해 중국 기업과 계약을 맺고 있었고, 30%는 자사의 의약품 제조를 위해 중국과 관련이 있는 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었다. 2023년 기준 미국이 수입하는 의약품 생산국 1위가 중국으로 전체 수입량의 31.5%를 차지했다.
◇한국 기업 반사 이익 기대
세계 최대 의료 시장인 미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줄어들면 한국 기업들은 반사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장 먼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지목된 기업은 삼성바이오로직스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우시바이오로직스에 이어 글로벌 CDMO 기업 매출액 순위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시바이오로직스를 규제 기업으로 명시한 바이오 보안법이 시행되면, 우시바이오로직스를 통해 약을 생산하던 기업들은 다른 CDMO 기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일본과 인도 등 다른 국가들도 중국의 빈자리를 노리고 있어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 후지필름과 인도 엔젠바이오사이언스 등 CDMO 기업들은 발 빠르게 미국에 생산시설을 세우며 현지 공략에 나섰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여러 나라가 바이오 보안법 도입에 따른 반사 이익을 노리고 있다”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