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식품의약국(FDA)이 2일(현지 시각)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일리의 알츠하이머 신약 ‘키썬라(성분명 도나네맙)’를 정식 승인했다. 앞서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해 FDA 승인을 받은 아두헬름(2021년), 레켐비(2023년)에 이어 세 번째 FDA 승인을 받은 알츠하이머 신약이 나온 것이다. 특히 이번 신약은 알츠하이머 원인으로 알려진 뇌 속 노폐물 응집을 제거하는 치료 효과가 있어 이전 신약보다 알츠하이머 정복에 한 발 더 나아갔다는 평가다. 실제로 임상시험에서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투약을 중단해도 될 정도로 효능을 보였고, 이를 통해 치료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알츠하이머 신약의 대중화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지 저하 속도 35% 늦춰
알츠하이머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 가장 유력한 가설은 뇌에 쌓이는 ‘독성 아밀로이드 플라크(단백질 덩어리)’를 원인으로 보는 ‘아밀로이드 가설’이다. 현재까지 FDA 승인을 받은 알츠하이머 신약 3종(아두헬름·레켐비·키썬라)은 이 가설에 기반해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겨냥한 치료제다. FDA 첫 승인을 받은 아두헬름은 환자들의 인지 저하 속도를 늦췄다는 임상 결과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효능 논란을 빚다 올해 2월 개발사인 바이오젠이 판매를 중단했다. 바이오젠이 일본 바이오 기업 에자이와 공동 개발해 지난해 7월 FDA 승인을 받은 ‘레켐비’는 독성 아밀로이드가 응집되는 것을 막는 치료제다. 이번에 FDA가 승인한 ‘키썬라’는 응집된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것이어서 레켐비와 구별된다. 키썬라를 개발한 일라이릴리는 “독성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모두 제거하면 투약을 중단해도 효과가 지속된다”며 레켐비보다 효능이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키썬라는 가벼운 정도의 인지 장애 또는 경증 치매 증상을 가진 알츠하이머 환자 1736명이 참가한 국제 임상 3상 시험에서 가짜 약 투약군 대비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35% 늦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도(輕度) 인지 장애가 있는 극초기 환자들에게서는 인지 저하 속도를 최대 60%까지 늦추는 효과를 보였다. 앞선 임상에서 레켐비는 인지 저하 속도를 27% 늦춘 것으로 나타났다.
일라이릴리는 키썬라의 치료 편의성도 내세운다. 레켐비는 2주 간격으로 투약해야 하는 반면 키썬라는 한 달 간격으로 투약하면 된다는 것이다. 또 독성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제거한 후에는 투약 중단이 가능하다는 점도 키썬라의 장점으로 꼽는다. 예컨대 레켐비는 연간 투약 비용이 미국 기준 2만6000달러(약 3600만원)이고, 투약을 계속해야 독성 아밀로이드 응집을 막을 수 있다. 이에 비해 키썬라는 연간 투약 비용이 3만2000달러(약 4450만원)로 다소 높게 책정됐지만, 응집된 아밀로이드가 제거되면 투약을 중단해도 돼 총 비용은 덜 든다는 것이다. 일라이릴리는 “키썬라 투약 시험에서 18개월 이내에 참가자 69%의 응집 아밀로이드가 제거돼 투약을 중단할 수 있었다”며 “투약 기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치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알츠하이머 치료 대중화를 위해선 4000만원이 넘는 연간 비용을 대폭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자 범위와 부작용은 숙제
FDA는 이번 키썬라 승인을 밝히며 “키썬라의 투여 대상은 가벼운 인지 장애 또는 경증 치매 단계의 환자”라고 했다. 이전 신약처럼 효능의 범위가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 FDA는 이번 승인 문서에 ‘아밀로이드 연관 혈관병증(ARIA)’ 부작용에 대한 경고를 덧붙였다. 키썬라는 3상 임상시험 과정에서 36.8%가 뇌부종과 미세 출혈 등 부작용을 겪었고, 이 중 3명은 증상이 심각해져 사망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FDA는 부작용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뇌의 일시적 부종으로 나타나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이 드물게 발생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지난해 레켐비 또한 비슷한 수준의 부작용이 경고됐고, 실제로 지난해 시판 이후 부작용도 보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