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미국당뇨학회(ADA) 연례 학술대회의 주제는 ‘당뇨병의 패러다임 전환, 지식에서 행동으로’ 였다. 이번 주제와 걸맞게, 이번 학회에서는 당뇨병 치료제와 함께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 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파티드)와 같은 비만 치료제에 관심이 집중됐다. 위고비와 젭바운드의 영역 확장은 물론이고, 당뇨병 약으로 개발됐으나 비만 치료제로도 확장할 수 있는 제3의 성분을 찾는 노력도 활발했다. ADA는 당뇨·비만 치료 분야에서 세계 최대 글로벌 학회로 매년 1만 2000명이 넘는 의대 교수들이 참석한다.
9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이번 ADA가 제시한 것처럼 대웅제약은 당뇨약인 ‘엔블로(성분명 이나보글리플로진)’를 비만 치료제로 개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나보글리플로진에 메트포르민과 같은 혈당 관리 의약품을 결합해 체중감량 효과를 높이는 방식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웅제약은 이미 비만견을 대상으로 한 엔블로 체중 감량 실험에서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엔블로는 위고비와 젭바운드와 같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의약품이 아니지만, 이 약을 처방 받고 체중을 적게 1㎏에서 많게는 10㎏까지 감량했다는 경험담들이 쏟아지고 있다. 엔블로는 SGLT(나트륨-포도당 공동수송체)-2 억제제 계열 약물이다. 콩팥(신장)에서 나트륨과 포도당을 실어 나르는 수용체를 억제해서 혈당을 조절한다.
소금(나트륨)과 설탕(당)의 재흡수를 막으니 소변으로 소금과 설탕이 빠져나가 혈당과 체중이 떨어진다.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해서, 혈압도 낮춘다. 같은 방식의 당뇨병 치료제인 포시가(성분명 다파글리플로진)와 자디앙(엠파글리플로진)도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체중 감소가 꼽힌다. 포시가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자디앙은 독일 베링거 인겔하임과 미국 일라이 릴리가 공동 개발한 당뇨병 치료제이다.
베링거 인겔하임과 일라이 릴리는 자디앙에 메트포르민을 결합한 복합 당뇨 치료제인 자디앙 듀오를 개발했다. 이 약도 비만 치료제로 활용된다. 국내 내과 의원에서는 자디앙 듀오를 체중 감량 목적으로 처방하기도 한다. 인터넷에 ‘자디앙 듀오’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다이어트’가 뜰 정도다. 비만 치료제로 돌풍을 일으킨 위고비와 젭바운드도 처음에는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체중 감량 효과가 커서 비만 치료제로 승인을 받았다.
SGLT-2억제제를 비만 치료제로 개발하려면 극복해야 할 한계도 뚜렷하다. 이 의약품이 체중 감량 효과가 있지만, 부작용도 명확하게 있기 때문이다. 당이 소변으로 빠져나가다 보니 요로 감염에 취약해진다. 여성은 칸디다질염, 남성은 포피염이 생길 수 있다. 비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하지 않아 안전성을 보장할 의학적 근거가 없다.
다른 제약사들도 비만 치료 복합제를 개발하고 있다. 위고비와 같은 GLP-1 유사체를 다른 비만 억제 성분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GLP-1과 GIP(위 억제 펩타이드), 글루카곤(GCG)을 조합하는 이중, 삼중 작용제들이다.
한미약품이 개발한 HM15275는 GLP-1과 GIP(위 억제 펩타이드), GCG(글루카곤)에 삼중 작용하는 비만 치료제다. GIP는 GLP-1 수용체 작용제의 이점을 높이고, 메스꺼움과 구토, 설사 같은 부작용을 줄인다. 동물실험에서 평균 25% 이상의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한미약품은 삼중 비만 치료제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임상 1상 시험 승인을 받았다.
동아에스티는 미국 자회사인 뉴로보파마슈티컬스와 GLP-1 수용체와 글루카곤 수용체에 동시에 작용하는 이중 작용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 후보물질은 지난해 글로벌 임상 1상 시험으로 미국에서 첫 환자 투여를 개시했다.
일라이 릴리의 차세대 비만 치료제 후보 물질인 레타트루타이드도 글루카곤 수용체(GCGR), 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친화 폴리펩티드 수용체(GIPR),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GLP-1R)를 결합한 삼중 작용제다. 레타트루타이드는 투약 36주째 체중 16.9%를 줄이는 효과를 보였다. 이는 위고비와 젭바운드의 체중 감량 효과를 뛰어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