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보다 뜨거운 ‘인공 태양’으로 불리며 에너지의 미래로 주목받는 ‘국제 핵융합 시험로(ITER)’ 가동 개시가 내년에서 2034년으로 9년 연기됐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3일(현지 시각) ITER가 발표한 가동 시기 연기 결정을 전하며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여파로 부품·인력 수급 난항을 겪었고, 제조 결함 등으로 규제 당국이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되는 핵융합 발전 상용화가 한 발 멀어진 셈이다. 하지만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핵융합 발전은 현실화를 앞둔 것으로 과학기술계는 전망한다.

그래픽=이진영

◇태양처럼 무한한 ‘꿈의 에너지’

핵융합 발전(發電)은 태양이 에너지를 내는 원리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것이다. 에너지원이 제한적인 화력, 수력 발전과 달리 원료가 사실상 무한에 가깝고 환경오염이 없어 ‘꿈의 에너지’로 불리고 있다. 원자력 발전이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원소의 원자핵 충돌로 일어나는 ‘핵분열’을 이용하는 반면, 핵융합 발전은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융합하면서 헬륨으로 바뀔 때 나오는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한다.

스스로 무한히 에너지를 생산하는 태양을 지구상에 구현해 전력난을 해결하자는 구상이 구체화된 때는 1980년대다. 핵융합 연료 1g으로 석유 8t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낼 수 있고, 핵융합 발전에 성공하면 거의 무한 가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았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총서기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핵융합 발전 현실화를 위해 ITER 사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고, 한국·유럽·중국·인도·일본 등이 동참해 2006년 본격적인 ITER 기구가 발족했다. 현재 ITER는 프랑스 남부의 카다라슈 지역에 핵융합 시험로를 건설하고 있다.

핵융합을 일으키려면 섭씨 1500만도에 달하는 태양의 내부 이상의 고온·고압 환경을 구현해야 한다. 조건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방식이 연구되고 있는데, ITER와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등이 택한 방식은 초고온의 플라스마(plasma)를 강력한 자기장으로 가두는 ‘토카막(tokamak)’ 방식이다. 플라스마는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상태로, 고체·액체·기체가 아닌 물질의 4번째 상태로 불린다. 토카막은 플라스마를 가두는 원형 도넛 모양의 진공 용기라는 뜻의 러시아어 약자다.

ITER는 입자 빔과 마이크로파로 플라스마를 태양 온도의 10배에 달하는 섭씨 1억5000만도까지 가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때 초고온 플라스마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도록 자기장을 형성하는 초전도 자석을 주변에 두르는데, 초전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석을 영하 269도까지 냉각해야 해 기술 구현이 쉽지 않다. 핵융합 시험로 설계를 마치고 각국이 개발한 부품들을 조립하는 단계인 현재에도 기술적 문제가 발견되고,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 일부 재료를 바꾸자는 의견이 나오는 등 난관이 이어지고 있다. 가동 일정이 당초 2016년에서 2025년으로 한 차례 연기된 데 이어 2034년으로 또 늦춰진 배경이다. 가동 이후 실제 핵융합 반응 실험은 2039년에야 가능해 ITER의 실질적 성과는 2040년 이후에 나올 전망이다.

◇민간 기업들도 핵융합 발전 도전

핵융합 발전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 정부 산하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는 2022년 세계 최초로 핵융합 점화에 성공한 데 이어 지난해 7월 두 번째 점화도 성공했다. 핵융합 점화는 핵융합을 일으키기 위해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했다는 의미로, 핵융합 발전으로 나아가는 주요 이정표로 평가된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발전 등 AI 관련 산업의 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샘 올트먼 오픈AI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등도 핵융합 발전에 투자하고 있다. 올트먼의 투자를 받은 미국의 핵융합 발전 스타트업 헬리온에너지는 MS에 2028년부터 핵융합 발전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계약을 맺었다. 정기정 ITER 한국사업단장은 “에너지 스타트업을 비롯해 민간기업이 핵융합 발전 상용화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ITER가 앞장서 핵융합 기술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