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피스 미츠는 살아 있는 동물에게서 세포를 추출한 뒤 이를 배양해 고기를 만든다. 도축을 하지 않을 뿐 실제 동물 고기 맛과 차이가 거의 없다. 멤피스 미츠 직원이 배양육 샘플을 보여주고 있다./멤피스 미츠

소와 돼지, 닭 등을 키워 고기를 생산하는 기존 축산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기후변화로 사료 재배 비용이 늘고 있고 가축을 키울 토지도 부족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가축 사육은 항생제 남용으로 인류의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배양육’을 지목한다. 배양육은 가축을 직접 키우는 대신, 가축의 줄기세포를 세포배양액에서 키워 만드는 인공 고기다. 가축을 도살하지 않고도 세포를 늘리는 방식으로 고기를 만들 수 있다.

1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바이오플러스 인터펙스 코리아(BIX 2024)’에서 배양육 전문가들은 “이미 배양육을 생산하는 다양한 기술이 개발됐다”며 “배양육은 실험실 수준을 넘어 마트 가판대에 오르기 직전”이라고 입을 모았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까지 배양육 생산규모는 210만t으로 성장해 250억달러(약 34조원) 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날 컨퍼런스에서 배양육이 대중화되려면 맛과 식감이 실제 고기와 비슷한 배양육을 저렴하게 대량 생산할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미래식량안보의 중심: 배양육’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에서 마아나사 리비쿠마르 굿푸드연구소(GFI) 아태연구소 과학기술전문가는 “2050년쯤 세계 인구가 100억명에 도달하면 동물 단백질 수요가 점점 증가할 것”이라며 “수산물이나 다른 동물 단백질을 이용해 배양육을 생산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굿푸드연구소는 배양육 같은 대체육을 홍보하는 단체이다.

그래픽=손민균

◇배양육에서 고깃결과 마블링까지 구현

배양육은 스캐폴드(지지대)에 세포를 쌓거나, 3D(입체) 프린터로 세포를 층층이 쌓아 만든다. 최근에는 고기 근육과 지방뿐 아니라 근육세포가 자라는 방향인 고깃결까지 구현해 실제와 비슷하게 만드는 기술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지대가 있으면 고기 식감이 반감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스라엘의 대체육 제조업체인 ‘리디파인 미트’는 고기 살코기 사이사이에 낀 마블링(지방)을 살리기 위해 3D 프린터를 이용한다. 맛있는 소고기가 단백질, 지방, 물이 어떤 비율로 어떻게 분포하는지 분석해 3차원 설계도로 만든 다음 구성 성분들이 포함된 바이오 잉크로 찍어낸다.

이미 기술적인 면에서는 배양육이 식탁에 올라올 준비가 다 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로 전 세계에서 고기 대신 배양육을 먹으려면 우선 대량생산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현근 다나그린 이사는 “현재 배양육 생산 업체 대부분은 부유 배양 방식을 이용해 대량생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유 배양 방식이란 지지대 없이 세포를 배양액 안에서 쌓아 만드는 방식을 말한다. 지 이사는 “하지만 근육세포는 원래 부착 상태에서 자라는 세포인 만큼 다음 세대의 배양육은 부착 배양법을 활용할 것”이라며 “이 부분에 바이오 재료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부착 상태에서 세포성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축의 절대적인 수가 줄 것에 대비해 고기가 아닌 다른 단백질원을 이용하기도 한다. 가축 세포 하나 없이 식물성 단백질을 쌓아 고기를 만드는 것이다. 굿푸드연구소는 콩이나 밀, 해산물에서 얻은 단백질로 소고기의 맛·식감과 비슷하게 만드는 방법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바이오 기업인 트리플바의 숀 맨체스터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날 “소나 닭, 돼지처럼 기존 가축에서 분리한 세포를 키워 배양육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저비용, 대규모 생산이 어렵다”며 “트리플바는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세포를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배양기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가축 세포 대신 다른 포유류나 어류, 조류에서 얻은 세포를 짧은 시간 동안 저비용 배지를 이용해 고밀도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1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바이오플러스 인터펙스 코리아'에서 배양육 생산 기업 전문가들은 저렴한 생산 공정으로 배양육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정아 기자

◇배양육 대중화는 대량생산이 관건

굿푸드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배양육 생산 관련 스타트업이 174개가 있다. 투자액만 30억달러(약 4조원)가 넘는다. 이 중 4분의 1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 대한민국 순으로 많다. 이 기업들은 배양육을 저렴하게 대량생산 할 수 있는 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싱가포르와 미국 소비자들은 이미 배양육을 마트에서 살 수 있다. 싱가포르는 2020년 세계 최초로 미국 잇저스트가 개발한 닭고기 배양육을 생산, 판매토록 승인했다. 미국도 2022년부터 닭고기 배양육 판매를 승인했다. 소고기보다 닭고기 배양육이 먼저 시판되고 있는 이유는 닭 세포가 대량생산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닭고기 외에도 소고기, 돼지고기 등의 배양육을 맛보려면 대량생산이 가능해야 한다는 숙제를 풀어야 하는 셈이다.

한국도 배양육 상용화에 한 걸음 다가섰다. 올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 등의 한시적 기준 및 규격 인정 기준’을 일부 개정 고시했다. 세포를 배양해 만든 식품원료를 한시적으로 식품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또한 경상북도는 올해 ‘세포배양식품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최근 배양육 업계는 기업마다 특화된 기술을 맡는 식으로 변모하고 있다. 과거에는 한 기업이 줄기세포 채취부터 배양육 생산까지 도맡아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방식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배양육을 생산하는 비용을 줄이거나 대량생산하기가 어렵다. 지금은 다른 기업에 식재료를 만들어 판매하는 B2B 방식이 늘고 있다. 줄기세포와 지지대, 배지 등을 저렴하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다른 기업에 공급한다.

미국 배양육 업체 저스트 잇의 닭고기 배양육. 배양육으로는 처음 2020년 싱가포르에서 정식 판매 허가를 받았다./잇저스트

굿푸드연구소의 리비쿠마르 박사는 “예를 들면 배양 배지의 비용을 1㎏당 100달러 수준으로 낮추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 여러 곳에서 저비용 배지를 사용하거나, 배지의 양을 줄이고 재활용하는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그는 “실제로 이러한 기술들을 개발하는 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기술을 가진 기업끼리 B2B 방식으로 협력해 배양육 제품을 만드는 일이 일반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대상과 CJ제일제당, 샘표식품, HY(구 한국야쿠르트), 한화솔루션 같은 대기업은 물론, 여러 스타트업들이 각자 특화된 배양육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효모와 대체단백질 개발기업인 바이오크래프트와 언하우스, 배양배지와 세포주, 성장인자개발기업인 엑셀세라퓨틱스, 비욘드셀, 바이오앱, 케이셀바이오사이언스, 제조공정 개발기업인 마이크로디지탈, 써모피셔 사이언티픽 코리아 등이다.

리비쿠마르 박사는 “앞으로도 기업간 B2B를 통해 배양육 산업이 발전할 것”이라며 “한국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만큼 배양육을 상용화할 시기가 다가올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