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아 지구의 자전 속도가 줄어, 하루의 길이가 늘어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루의 길이는 자연현상에 따라 길어져 왔지만, 인간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이 현상을 더 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하루 길이는 100년간 수 ㎳(밀리초·1000분의 1초)로 매우 짧지만, 위성항법장치(GPS)의 정확성을 떨어뜨리고, 정밀한 시간을 기준으로 작동하는 기기에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연의 시간도 바꾸는 온난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와 미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등 공동 연구팀은 관측 데이터와 기후 모델을 통해1900년 이후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지난 100년간 하루의 길이가 0.3~1.0㎳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저명 국제 학술지인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됐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달의 움직임, 지구 내 대기 등 자연현상으로 계속해서 변해 왔다. 자전 속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조석(潮汐) 마찰’이다. 조석 마찰은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면서 해저에서 생기는 마찰로, 이로 인해 지구의 자전이 방해를 받는다. 조석 마찰은 하루의 길이를 100년마다 2.4㎳ 늘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억2000만년 전에는 하루 길이가 22시간 안팎이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구온난화는 이처럼 자연현상으로 늦어지는 자전 속도를 더욱 늦추는 것으로 밝혀졌다. 온난화로 그린란드나 남극 대륙을 덮고 있는 빙하가 녹고, 녹은 얼음물은 원심력 영향으로 적도 부근으로 흘러든다. 극지방의 얼음은 줄어들고 적도 부근의 바닷물은 더 많아지면서, 지구의 남북 축은 미세하게나마 짧아지고, 적도 축은 길어진다. 지구 모양이 좀더 납작해지고 뚱뚱해지면서 자전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다. 빙판 위의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팔을 앞으로 뻗으면서 돌면, 회전 속도가 느려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자전 속도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해 1900년부터 2000년까지 100년간 하루의 길이가 0.3~1.0㎳ 늘어난 것으로 추산했다. 2000년 이후에는 100년간 1.3~1.36㎳로 증가 폭이 늘어난다. 연구팀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2100년에는 100년간 하루의 길이가 1.83~3.41㎳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자연현상인 조석 마찰보다 인간 활동으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자전 속도에 더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연구 저자인 베네딕트 소야 취리히 연방공대 교수는 “인간 활동이 지역적인 온도 상승을 넘어 지구 전체의 움직이고 회전하는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꾸는 것을 볼 수 있다”며 “과거 수십억년간 진행된 변화를 인류는 탄소 배출로 100~200년 사이에 일으켰다”고 했다.
하루 길이의 변화는 일상 생활에서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정확한 시간이 요구되는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구팀은 “인터넷, 통신 및 금융거래를 운영하는 모든 데이터 센터는 정확한 시간 측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며 “항해나 위성, 우주선의 경우 더욱 정확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구 자전축도 바뀌어
같은 연구팀이 12일 ‘네이처 지구과학(Nature Geoscience)’에 게재한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지구 자전축에도 영향을 끼친다. 북극과 남극을 잇는 가상의 선인 ‘자전축’은 1년에 수 ㎝씩 흔들린다. 지금까지는 맨틀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대류 현상 등이나 외핵의 열 흐름 등 지구 내부의 변화가 자전축 변화의 핵심으로 꼽혔다. 하지만 극지방에서 얼음이 사라지는 현상이 자전축 이동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최근 수십년간 나타난 지구 자전축 변화의 90%가 이 같은 극지방의 얼음 손실로 인한 현상이라고 밝혔다. 지구 내부 변화보다 인간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의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다.
두 논문의 저자인 수렌드라 아디카리 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얼음이 너무 많이 녹아서 지구가 회전하는 방식 자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후 비상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