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진영·Midjourney

미국 상원 의회가 ‘환자를 위한 저렴한 처방 법안’을 최근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제약사들이 신약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특허 건수에 제한을 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표 발의자인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 존 코닌 의원은 “이 법안이 특허를 남용한 기업의 반경쟁적 관행을 규제해 처방약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법안을 비롯해 미국에서 약가(藥價)를 낮추는 여러 정책이 도입되면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바이오시밀러를 보유한 국내 제약사들이 반사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그래픽=이진영

◇74개 특허로 보호받는 오리지널 약품

블록버스터(연간 매출 1조원 이상인 의약품)를 보유한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은 오리지널 약품의 특허 기한이 만료되면 출시되는 바이오시밀러로부터 매출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전략을 쓴다. 대표적인 것이 여러 건의 특허를 내 특허권을 강화하는 것으로, ‘특허 덤불’로 부른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성분은 물론이고 작용 기전과 제형 등 다양한 특징을 세분화해 특허를 내는 방식으로 특허권을 복잡하게 중첩하는 전략이다.

미국의 공익 단체인 ‘의약품, 접근성 및 지식을 위한 이니셔티브(I-MAK)’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위 10개 약품의 경우 1개당 평균 74개의 특허가 걸려 있다. 이 단체는 중첩 특허가 미국 내 약값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시민단체 ‘저렴한 약을 찾는 환자들’은 글로벌 블록버스터인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를 대표적인 예시로 꼽는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이 약을 개발한 에브비는 250개의 특허 중첩으로 20년간 오리지널 약물을 지켜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의회 예산처는 특허 중첩을 억제하면 10년간 18억달러(약 2조5000억원) 규모의 부담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미 상원이 통과시킨 이번 법안은 특허 침해를 주장할 수 있는 특허 수를 분야당 최대 20개로 제한한다. 다만 법원이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제한을 완화할 수 있다. 초당적으로 합의한 법안이어서 하원 표결도 무난히 거치고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의회는 이 법안이 ‘중첩 특허’를 막으면서도 기존의 혁신 의약품에 대한 인센티브를 일부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지원, 韓 제약사엔 기회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바이오시밀러 제조사에 유리한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FDA는 인터체인저블(상호교환성) 바이오시밀러로 지정받는 데 필요한 추가 연구를 생략하기 위한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 인터체인저블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의약품과 교체 처방이 가능한 바이오시밀러다. 현재 미국 약국에서는 처방약을 바이오시밀러로 교체하려면 허용 여부를 평가한 별도의 인터체인저블 연구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생략하는 내용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는 손쉽게 대체 처방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내년 1월 시행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도 한국의 바이오시밀러 제조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는 연간 환자 부담금이 8000달러를 넘어가면 초과분에 대해 보험사가 20%, 정부가 80%를 부담하고 있다. IRA 시행 이후에는 환자 부담금이 2000달러를 넘어가는 경우면 초과분에 대해 정부 부담은 20%로 줄어드는 반면, 보험사 부담은 60%로 늘어난다. 고가 의약품일수록 보험사의 부담이 높아지게 돼 약값이 저렴한 바이오시밀러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미국의 이런 정책 방향은 바이오시밀러 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국내 제약업계에 기회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FDA는 지금까지 56개의 바이오시밀러를 허가했는데, 이 중 미국 제약사 제품이 24개로 가장 많고 한국 제약사 제품이 12개로 2위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들의 해외 시장 매출은 여전히 바이오시밀러 약품이 이끌고 있다”며 “미국 정부의 바이오시밀러 친화 정책에 대해 국내 제약 바이오 업계가 치밀한 전략을 세워 호재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