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10월 11일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준공식 사진. 왼쪽부터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삼성전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창사 이래 최초로 상반기 매출액 2조원을 돌파하면서 처음으로 연 매출 4조원을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회사의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3% 늘어 2조 1038억원,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47% 늘어 6558억원을 기록했다.

별도 기준으로 모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반기 매출액은 1조 4797억원, 영업이익은 5620억원이다.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상반기 매출은 8100억원, 영업이익은 2952억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위탁개발생산(CDMO)을 하고,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와 신약 연구개발(R&D)을 담당한다.

특히 2분기 모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보다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더 큰 폭의 성장을 보였다. 2분기 실적 증가 폭을 보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7% 늘었고, 영업이익은 30% 성장했다. 같은 기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매출액은 107% 늘었고, 영업이익은 무려 514% 급증했다. 바이오시밀러의 해외 판매가 늘고, 미국과 유럽에서 신규 바이오시밀러 허가 획득으로 대규모 마일스톤(개발 성과에 대한 대가)이 재무 성과에 반영된 영향이다.

◇“13년 장수 CEO 고한승 뚝심 통했다”

최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성장세가 두드러지자 업계에선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의 뚝심이 통했다”는 말이 나왔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0년 바이오산업을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뒤 2011년과 2012년 각각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바이오에 뛰어든 한국 재계 1위 기업의 의약품 개발 의지와 기술 역량을 입증하는 건 R&D 전문업체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몫이었다. 하지만 출범 초기 위탁개발생산 사업을 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가시적인 재무 성과를 먼저 내면서 시장 일각에선 삼성의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2년 출범 이후 매년 적자를 내다 2019년 영업이익 1228억원을 거두며 첫 흑자를 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보다 1년 먼저 첫 영업이익 흑자 전환을 이뤘다.

고한승 한국바이오협회장·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오른쪽)와 해외 기업인들이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바이오플러스·인터펙스 코리아(BIX2024)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전시 부스를 방문해 회사의 생산시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5공장 건설과 ADC 시장 진출 등을 통해 성장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허지윤 기자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출범 이후 첫 대표이사로 맡아 현재까지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을 진두지휘해 왔다.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을 맡아 세계 시장에 한국 기업들의 잠재력과 역량을 알리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그는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UC버클리대 생화학과를 졸업, 노스웨스턴대 대학원에서 유전공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바이오 벤처기업 다이액스를 거쳐 삼성종합기술원 바이오헬스랩장과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 전무를 지냈다.

회사 관계자는 “고한승 대표는 기본과 원칙을 강조하는 업무 수행 방식과 데이터·프로세스 기반의 의사결정시스템 등의 기업 문화를 조성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오시밀러 개발과 판매를 통해 고품질 의약품의 환자 접근성 확대와 이를 바탕으로 한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 구축에 기여하고 사회적 가치를 전파해야 한다는 에피스의 미션을 임직원에 늘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美 시장 기회 커진다… 특허 전쟁 돌파구 찾아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가장 먼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인 ‘렌플렉시스’를 개발해 2016년 유럽의약국(EMA) 허가를 받았다. 이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도 받았다.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바이오시밀러 제품 8종의 품목 허가를 획득했다. 국내 허가를 받은 제품은 총 9종이다.

올해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의 바이오시밀러로 개발된 ‘피즈치바’가 6월과 7월 유럽과 미국에서 각각 허가를 받았다. 초고가 희소질환 치료제인 솔라리스 바이오시밀러 ‘에피스클리’도 작년 유럽에 이어 올해 7월 미국 품목 허가를 받았다. 에피스클리는 지난해 7월 유럽에 출시해 독일, 이탈리아 솔라리스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프랑스 최대 구매조합(UniHA)과 네덜란드 주정부 입찰 수주 등의 성과도 잇달았다.

세계 시장에 출시되는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확대되고, 각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상승하고 있는 만큼 회사의 실적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최근 증권 시장에서는 미국 헬스케어 정책에 따른 수혜가 기대되는 영역으로 바이오시밀러와 위탁생산(CMO)을 꼽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의약품 가격 인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앞으로 미 정부는 의약품 경쟁을 통해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 바이오시밀러 사용을 촉진할 전망이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인 이큐비아(IQVIA)는 2028년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2023년 대비 약 2배 성장해 600억달러(약 82조 89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다만, 사업 걸림돌도 생겨나고 있다. 오리지널약을 보유한 회사들이 물질 특허 만료 이후에도 독점 기간을 연장하고자 여러 유형의 개량 특허를 쪼개 출원하는 이른바 ‘에버그린 전략’을 펼치며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제약사 리제네론의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 특허 분쟁이 대표적이다. 리제네론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비롯한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들에게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다. 바이오시밀러 회사로선 특허 분쟁으로 출시 일정이 밀리고 소송 비용이 증가하는 위험이 생긴 상황이다.

업계는 삼성그룹이 바이오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것이라고 본다. 이 점에서 바이오시밀러뿐 아니라 바이오 신약 개발 사업에 본격 진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한 번도 신약 개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내부에서 은밀히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신약 개발 사업 중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망 기술인 세포유전자치료제(CGT), 항체약물접합체(ADC) 기반 신약 개발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22년 하반기 기존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본부와 차별화된 성격의 선행개발본부를 신설했는데, 이 부서에서 신약후보물질 초기 연구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