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장수풍뎅이의 비행 원리를 밝혀내고, 날갯짓을 모방한 비행 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비행 중 충돌에도 날개가 파손되지 않고, 평소엔 날개를 접고 부피를 줄일 수 있어 정찰·탐사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훈철 건국대 스마트운행체공학과 교수 연구진은 1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장수풍뎅이의 날개 펼침과 접힘을 모방한 비행 로봇 ‘KU비틀’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로봇은 무게가 18g이고 날개를 완전히 펼치면 폭이 20㎝이다.
박 교수의 제자인 판 호앙 부(Hoang-Vu Phan) 스위스 로잔 공대(EPFL) 박사후연구원이 논문 교신저자이며, 다리오 플로리아노(Dario Floreano) 로잔 공대 교수와 박 교수가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앞서 박 교수는 장수풍뎅이 모방 로봇의 비행 중 충돌 실험 결과를 2020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장수풍뎅이 모방 로봇으로 과학계 양대 학술지에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장수풍뎅이의 날개는 딱딱한 겉날개와 비행운동을 수행하는 얇은 속날개로 나뉜다. 비행 직전에 겉날개를 완전히 펼치면 속날개는 접힌 채로 노출된다. 장수풍뎅이는 접힌 속날개를 완전히 펼치면서 날기 시작한다. 그동안 장수풍뎅이가 비행하는 원리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비행하는 힘의 근원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연구진은 장수풍뎅이의 날갯짓 각도와 날개 펼침 각도의 변화에 주목했다. 장수풍뎅이가 겉날개를 열면 종이접기 방식으로 접혀있던 속날개가 마치 스프링처럼 펼쳐진다. 장수풍뎅이 속날개는 연결된 근육이 없다. 겉날개만 근육이 연결돼 여닫을 수 있다. 이로 인해 비행 중 속날개는 근육 대신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다. 겉날개가 열린 상태에서 퍼덕이면 원심력이 일어나 접힌 속날개가 완전히 펼쳐지면서 날갯짓이 시작되고, 이때 발생하는 양력으로 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장수풍뎅이가 착륙할 때는 겉날개 움직임을 멈추고, 이때 원심력이 사라져 속날개가 완전히 접힌다.
KU비틀은 장수풍뎅이의 비행 원리를 이용해 수직 상승과 정지 비행, 착륙을 할 수 있다. 로봇 날개는 평상시에 바닥으로 내려가 있는데, 모터로 퍼덕거리면서 원심력을 만든다. 이때 날개는 수직과 수평으로 운동하고,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면 양력이 생기면서 날 수 있다. 로봇이 비행 중 다른 물체와 충돌하면 모터 작동이 멈추면서 날개가 아래로 접힌 채 착륙하기 때문에 파손되지 않는다.
날개는 지지대와 날개 막, 경첩 관절, 탄성 힘줄로 이뤄졌다. 몸통과 날개를 잇는 경첩 관절 부분에는 고무줄과 비슷한 탄성 힘줄이 들어가 있다. 원심력과 탄성력으로 날갯짓 해 양력으로 비행 고도를 조절한다. 연구진은 비행 로봇이 작동하는 모습을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해 고도와 방향에 따른 궤적과 자세를 측정했다.
장수풍뎅이 모방 로봇은 보관이 편리해 이동성이 좋다. 작은 모터로 원심력과 탄성력을 이용해 비행하기 때문에 에너지 공급이 어려운 극한 환경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비행 방법이 효과적인 만큼 대기 밀도가 낮은 곳에서도 날 수 있다. 조그만 비행 로봇이지만, 군사 정찰이나 극지·우주 탐사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박훈철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장수풍뎅이의 비행 모습을 모방해 로봇으로 구현했다는 게 이번 연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지구의 극한 환경이나 화성처럼 대기 밀도가 낮은 곳에서도 날 수 있게끔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755-9
Science(2020),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bd3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