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정보부 요원이 딱정벌레처럼 생긴 로봇을 테러 단체의 본거지로 날렸다. 누가 봐도 곤충이지, 정찰 로봇으로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딱정벌레 로봇은 건물로 들어가 폭탄 테러를 준비하는 모습을 촬영해 요원의 휴대전화로 전송했다. 곧 무장 드론이 미사일을 발사해 건물을 날려버렸다. 2015년 개봉한 첩보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의 한 장면이다.
영화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 과학자가 있다. 박훈철(62) 건국대 스마트운행체공학과 교수는 장수풍뎅이만 20년 동안 관찰한 로봇공학자다. 그는 1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장수풍뎅이를 모방한 초소형 로봇을 발표했다. 장수풍뎅이는 머리에 기다란 뿔이 달린 딱정벌레다. 박 교수는 앞서 2020년에는 장수풍뎅이 로봇의 비행 중 충돌 실험을 분석한 논문을 사이언스에 게재했다. 4년 만에 장수풍뎅이 로봇 연구로 과학계 양대 학술지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장수풍뎅이 로봇은 무게가 18g이고 날개를 완전히 펼치면 폭이 20㎝다. 크기도 작고 원심력과 탄성력을 이용해 날기 때문에 에너지를 덜 쓴다. 지난 31일 건국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장수풍뎅이가 나는 모습을 초고속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보여줬다. 은퇴를 3년 앞뒀지만, 장수풍뎅이를 보는 눈빛은 갓 박사 학위를 받은 젊은 연구자처럼 빛났다. 박 교수는 “2004년부터 생물 모방 로봇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메뚜기와 물고기, 무당벌레도 함께 관찰했지만, 장수풍뎅이에 매혹됐다”며 “곤충은 대부분 잠자리나 나비처럼 날개가 펴진 상태로 있는데, 장수풍뎅이는 날 때만 겉날개를 들고 그 안에 접혀 있던 속날개를 펼치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장수풍뎅이 로봇은 비행 방법이 효과적인 만큼 대기 밀도가 낮은 곳에서도 날 수 있다. 박 교수는 “조그만 비행 로봇이지만, 군사 정찰이나 극지·우주 탐사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로봇이 비행 중 다른 물체와 충돌하면 모터 작동이 멈추면서 날개가 아래로 접힌 채 착륙하기 때문에 파손되지 않는다.
박 교수의 5평 남짓한 연구실은 장수풍뎅이 사진과 로봇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사이에 202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받은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상패도 눈에 띄었다. 연구실 건너편에 있는 박 교수의 실험실은 12평 정도다.
로봇공학자는 생물학자처럼 곤충의 신체 구조를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로봇으로 곤충의 움직임을 구현해야 한다. 곤충의 신체는 해부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 수천번 넘게 동작을 봐야 힘이 전달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장수풍뎅이는 야행성 곤충이기 때문에 밝은 곳에서는 날지 않는다. 비행 영상을 찍기 위해선 좁은 실험실에서 불을 끄고 긴 시간을 기다리기 일쑤였다. 장수풍뎅이를 힘들게 촬영하다 보니 영상이 자식처럼 느껴져 20년 치 연구 영상을 모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장수풍뎅이 로봇 ‘KU비틀’을 개발하는 동안에도 연구비가 넉넉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3D(입체) 프린터로 부품을 직접 만들고, 천장을 뚫어 초고속카메라를 설치하는 고육지책의 흔적도 곳곳에 보였다. 중국은 비행 로봇을 실험하기 위해 건물 한 층을 다 쓰기도 한다. 박 교수는 “해외 연구진이 협업하려고 찾아왔다가 연구 환경을 보고 놀라서 도망간다”며 “농담 삼아 얘기하지만, 아마 전 세계에서 논문당 연구비가 가장 싼 게 나일 것”이라고 웃었다.
박 교수는 KU비틀을 군사 정찰과 우주 탐사에 활용하기 위해 후속 연구를 하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최첨단 로봇을 한국이 보유하게 되는 미래가 머지않은 셈이다. 그는 “어떤 연구든 적어도 10년은 넘게 꾸준히 해야 결과물이 나온다”며 “은퇴까지 3년 남았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장수풍뎅이 로봇을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를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