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들은 난류를 만나면 무리 지어 헤엄친다. 마치 사이클 선수들이 펠로톤 밀집대형을 이루는 것과 같다./Deposit Photo

매년 파리에서 열리는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이클 대회다. 파리올림픽도 주말인 3~4일(현지 시각) 남녀 사이클 도로경기를 잇따라 개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토요일에는 남자 선수들이 273㎞, 일요일에는 여자 선수들이 158㎞를 달린다. 도로마다 사이클 선수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펠로톤(Peloton)’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자연에서 잇따라 펠로톤 경주를 발견했다. 하늘에서는 철새가 V자로 무리 지어 공기 저항을 이기고, 땅에서는 사람 몸속에서 정자들이 무리 지어 체액의 흐름을 거슬러 나아간다. 이번에 물속에서도 펠로톤 역주를 하는 물고기들이 확인됐다.

정자들이 무리 지어 이동하는 것은 사이클 선수들이 공기 저항을 덜 받기 위해 무리 지어 움직이는 펠로톤과 흡사하다./pixabay

◇난류 만나면 무리 지어 에너지 79% 절약

지난 1일 미국 뉴욕타임스지는 “이번 주말 파리 곳곳에서 사이클 선수들이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붙어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과학자들이 물속에 사는 물고기도 이와 같은 펠로톤 대형을 이용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조지 로더(George Lauder) 미국 하버드대 진화생물학과 교수 연구진은 지난 6월 국제 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에 “난류(亂流)를 만나면 혼자 헤엄치는 물고기보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물고기들이 더 쉽게 헤엄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실험실 수조에서 열대어 자이언트 다니오(Devario aequipinnatus)를 키우며 헤엄치는 모습과 에너지 사용량을 분석했다. 강한 난류가 흐르는 물살을 만들자 혼자 있는 열대어는 힘겨워했다. 꼬리를 빠르게 흔들고 머리를 불규칙하게 움직이며 물살과 싸우느라 잔잔한 물속에서 헤엄칠 때보다 에너지를 2.5배 더 썼다.

하지만 투르 드 프랑스에서 사이클 선수들이 펠로톤 대형을 이루듯 함께 모여 있던 열대어들은 무리를 이끄는 물고기 덕분에 가장 거친 난류를 피할 수 있었다. 맨 앞에 있는 물고기는 지느러미로 다른 물고기들에게 도달하기 전에 난류를 변화시켰다. 그 결과 선두 뒤에는 물 흐름이 잔잔해져 물고기들이 혼자 헤엄치는 물고기보다 최대 79% 적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뉴욕타임스지는 하버드대의 연구 결과는 물고기 떼가 난류 영향을 받는 방식을 처음으로 직접 측정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로더 교수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는 보호 어종을 보호하거나 침입 어종을 막기 위한 서식지의 설계, 유지 관리에도 적용될 수 있다”며 “앞으로 수중 또는 공중 동물의 집단 이동에 대한 에너지 역학을 탐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고기들이 무리 지어 헤엄치는 모습. 하버드대 연구진은 난류를 만나면 무리를 지어 에너지를 80% 가까이 절약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George Lauder

◇철새 V자 비행엔 무임승차 없어

펠로톤 대형은 자연 곳곳에서 발견된다. 하늘에서는 철새들의 V자 비행 대형에서 볼 수 있다. 철새들이 선두를 따라 V자 대형으로 날면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렇다고 늘 한 마리만 희생하지 않는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2015년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철새들은 V자 편대 비행을 할 때 힘이 많이 드는 맨 앞자리에 교대로 나서 전체적인 에너지 효율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중동과 아프리카 북부에 사는 철새인 붉은볼따오기의 V자 편대 비행에 담긴 비밀을 밝혀냈다.

앞에 나는 새의 날개 끝에는 공기 소용돌이가 생긴다. 소용돌이는 뒤로 가면서 상승기류를 만든다. 철새들은 앞선 새가 만드는 상승기류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V자 대형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V자 대형에서는 누군가는 힘이 가장 많이 드는 앞으로 나서야 한다. 자신의 이익만 따지는 동물 세계에 동료를 위해 희생하는 일이 가능할까.

연구진은 붉은볼따오기 14마리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센서를 장착하고 편대 비행 도중 각자 어느 자리에 있었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따오기는 평균적으로 비행시간의 32% 동안 다른 새를 뒤따라가며 상승기류를 이용했다. 놀랍게도 각각의 철새가 맨 앞으로 나서는 시간은 동료의 도움을 받는 시간에 비례했다. 철새의 비행에는 무임승차가 없는 셈이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소 정자들(노란 타원 안)은 개별 정자보다 점도가 높은 체액이 흐르는 생식기 안에서 더 잘 이동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미 노스 캐롤라이나 농업기술주립대

◇정자도 사이클 선수처럼 도우며 달려

정자도 사이클 선수와 같다. 정자가 난자를 찾아가는 여행은 한 치 양보도 없는 무한 경쟁의 질주가 아니라 서로를 밀어주는 사회적 협동 과정으로 밝혀졌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농업기술주립대 연구진은 2022년 국제 학술지 ‘첨단 세포발생생물학’에 “여성 생식기의 3차원 구조를 모방한 실험을 통해 소의 정자들이 2~4개체가 무리 지어 체액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네덜란드의 박물학자인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1678년 현미경으로 처음 인간의 정자를 관찰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정자의 운동은 수억 개체가 동시에 하나의 난자를 차지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로 여겨졌다. 미국 연구진은 관찰 방법이 맞지 않았다고 했다. 현미경으로 정자를 볼 때는 344년 전 처음 한 것처럼 물을 묻힌 유리판 사이에 정액을 눌러 붙인다. 이러면 제 여성 생식기의 3차원 입체 공간을 헤엄치는 정자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입체 공간을 가진 실리콘 미세관의 한쪽에 주사기로 여성 생식기에서 분비되는 체액처럼 점도가 높은 액체를 주입했다. 소의 자궁경부나 자궁 내부의 체액처럼 치즈가 녹은 정도의 점도를 구현했다. 반대편으로는 사람 정자와 모양과 운동 형태가 비슷한 소의 정자 약 1억 개체를 넣었다. 관찰 결과 정자들은 둘에서 넷 정도 개체가 무리를 지어 마주 흘러오는 끈적끈적한 액체를 거슬러 헤엄쳤다.

정자도 철새와 같이 무임승차를 하지 않고 공평하게 펠로톤 혜택을 받았다. 연구진에 따르면 모든 실험 조건에서 정자 하나가 앞으로 나와 이끌기보다 무리를 이뤘다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군집 안에서 위치도 바꿨다. 연구진은 “군집 이동은 정자 중 일부만이라도 난자가 있는 나팔관까지 갈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이라며 “무리를 짓지 않으면 어떤 개체도 자궁에 흐르는 체액의 강한 유속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누가 더 자연을 따라 하는지에 따라 파리올림픽 사이클의 메달 색이 달라지지 않을까.

참고 자료

PLoS Biology(2024),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bio.3002501

eLife(2024), DOI: https://doi.org/10.7554/eLife.90352.3

Frontiers in Cell and Developmental Biology(2022), DOI: https://doi.org/10.3389/fcell.2022.961623

PNAS(2015), DOI: https://doi.org/10.1073/pnas.1413589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