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초복을 이틀 앞두고 대구 중구노인복지관에서 열린 '초복 건강데이' 행사에서 어르신들이 복달임으로 제공된 삼계탕을 맛보고 있다. /뉴스1

나이가 들어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같은 나이지만 힘이 없고 인지능력이 떨어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젊은 시절 못지 않은 총명함과 노익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유독 노화의 시간이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노화에도 사람마다 속도가 있다고 보고 유독 빠른 노화 현상을 가속노화, 노쇠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아주대 예방의학과 이윤환 교수와 김진희 박사(연구강사)는 노쇠 현상과 관련이 있는 여러 요인 중 노인들의 식단에 주목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국제 학술지 ‘영양, 건강, 노화 저널’에 2016~2022년 국내 70~84세 노인 665명이 먹은 식단이 내재적 역량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5년 발표된 ‘건강과 노화’ 보고서에서 건강한 노화의 상태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내재적 역량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이동능력, 감각기능, 활력, 인지기능, 정신 건강 등 다섯 가지가 포함된다.

아주대 연구에 따르면 나이를 먹어도 심신이 건강한 노인들은 신선한 고기와 채소, 곡물을 다양하게 먹었다. 건강한 노인 남성들은 대체로 살코기와 채소, 과일, 통곡물 등을 골고루 섭취했다.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며 적절한 칼로리 안에서 약간의 술도 즐겼다. 이들은 쌀밥 위주의 간소한 식사를 하는 노인보다 내재적 역량이 우수했다.

노인이 돼서도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같은 나이지만 힘이 없고 인지능력이 떨어진 사람이 있는 반면 젊은 시절 못지 않은 총명함과 노익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에겐 유독 노화의 시간이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다. /존스홉킨스대

콩과 견과류, 과일, 육류, 우유를 골고루 먹는 여성 노인들도 노화가 느리게 진행됐다. 김진희 박사는 “나이가 먹었다고 간소한 식단을 유지하는 것보다 건강한 음식을 골고루 충분히,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정신과 신체 건강을 유지하는 지름길”이라며 “젊은 시절부터 건강한 식단을 갖고 노년에도 이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노인들은 대부분 “입맛도 없고 대충 때운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간소하게 먹는 것이 미덕이라는 잘못 생각하는 노인들도 많다. 제대로 먹고 싶어도 혼자 살아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은퇴 후 삶이 길어지면서 경제적 부담으로 식사비를 줄이는 사례도 많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다.

이 교수는 “내재적 역량에는 운동 빈도나 흡연 여부처럼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며 “한국인은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식이 패턴에 대한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2일 온라인을 통해 화상으로 진행했다.

아주대 예방의학과 이윤환 교수(왼쪽)와 김진희 박사(연구강사)는 이번 달 발행되는 국제학술지 영양, 건강, 노화 저널에 노인의 식단이 내재적 역량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을 냈다.

◇”누구나 늙지만 노화에도 차이가 있다”

–내재적 역량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이윤환)”건강 노화를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예전에는 노화를 만성질환인 고혈압, 당뇨 같은 질병 중심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다양한 기능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했다. 내재적이란 말 그대로 우리 몸이 가진 여러 요소의 상태를 살펴볼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신체적인 영역과 정신적 영역, 인지적인 부분, 활력 같은 역량을 지표로 삼기 시작했다. 걸어 다니거나 앉았다 일어서는 능력, 우울증이나 기억력 감퇴 여부, 특히 시력과 청력 같은 감각 기능도 종합적인 지표로 사용된다.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연구되던 걸 모두 고려한 종합 지수로 만든 것이다.”

–사람 따라 내재적 역량에 차이가 많이 나나?

(이윤환)”내재적 역량에 속하는 5가지 기준은 개인마다 차이가 많이 난다. 걷기만 해도 개인과 연령에 따라 차이가 매우 커서 민감한 노화 지표로 사용된다. 시력과 청력도 노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감각 기능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내재적 역량에 속한 5가지 기준은 서로 다 연결된다. 최근 청력이 떨어지면 인지 기능이 떨어지고 결국 기억력이 나빠진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소개됐다. 흔히 청력이 떨어지면 치매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도 있다. 인지 기능이 떨어지면 걷는 속도도 줄어들고 결국 걷기 활동이 줄어들면 다시 인지 기능에 악영향을 준다. 편의상 5가지로 기준을 정했지만 전체적으로 합쳐서 생각해야 노화에 대한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식이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진희)”노인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생활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담배를 끊고 술을 먹지 않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균형 잡힌 식단으로 골고루 먹으면 내재적 역량을 끌어올리는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식사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식단 같은 경우는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내재적역량 같은 개념이 등장한 지 얼마 안되다 보니 영양연구나 식이 패턴 연구가 부족했다.”

–매끼 식사를 어떻게 추적 조사했나.

(김진희)”조사원이 노인들의 집을 일정 간격으로 직접 방문해서 조사했다. 24시간 회상법이라고 해서 그릇이나 식품 사진을 놓고 전날 주로 많이 섭취한 음식과 섭취량을 직접 묻는 방식이다.”

서울시 한 구청의 노인종합복지관 점심 식단 메뉴. /서울시

◇밥·김치 고집하면 노쇠 빨라

–한국 노인들은 어떤 식사 패턴을 갖나.

(김진희)”남성은 골고루 좋은 걸 먹으면서 거기서 술도 먹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부류는 쌀하고 김치 위주로 먹는 다. 마지막 부류는 쌀을 위주로 먹지만 좀 더 골고루 먹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성은 콩과 견과류와 씨앗, 과일, 고기, 우유 같은 다양한 식품을 먹는 부류와 국수와 만두, 생선, 조개류를 많이 섭취하는 부류, 쌀과 김치를 많이 먹는 부류로 나뉜다. 노인 남성과 여성 모두 쌀 섭취량 비중이 높았다.”

–술 마시는 남성 노인이 의외로 내재적 역량이 높다는데.

(김진희)”남성 노인는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 섭취를 하는 비율이 높은데 이는 내재적 역량에 별로 좋지 않다. 반면 다양하게 먹으면서 술을 같이 먹는 부류는 내재적 역량이 좋은 것으로 나왔다. 물론 술이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는 보기 어렵다. 사실 술을 먹는 경우에도 전체 에너지 섭취량에서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적정 범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소나 육류, 유제품을 고루 먹으면 항산화나 항염증 같은 좋은 성분이 있어 술을 마셔도 내재적 역량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술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나머지 좋은 음식의 영향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여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윤환)”5~10년 전만 해도 나이를 먹어서도 골고루 먹고 약간의 술을 마시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시절이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레드 와인이 좋고 그 안에 여러 가지 항산화 요소가 있어서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좋고 특히 심혈 관계에 좋다는 연구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그 연구들에서 오류가 발견되면서 술 자체만 놓고 보면 백해무익하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거의 담배 수준으로 나쁘다는 게 정설이다.”

–일부 노인들은 건강 때문에 적게 먹는다.

(김진희)”남자와 여성 노인 집단 가운데 쌀과 김치, 채소를 많이 먹는 집단은 칼로리 섭취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칼로리 섭취량보다 아니라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라는 게 더 문제다. 에너지 적정 비율을 보면 밥과 김치를 주로 먹는 그룹이 탄수화물 섭취는 높고 지질 섭취는 정상 범위보다 낮다. 무조건 칼로리를 낮춰서 먹는 것은 현재 한국 상황에선 노인에게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건강에 좋은 다양한 식품을 먹으면 아무래도 칼로리 자체는 좀 더 올라갈 수 있다.”

(이윤환)”노쇠를 굉장히 악화시키는 요소 중에 하나가 소식이 좋다는 이야기다. 젊었을 때는 통하는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노년기에는 웬만하면 과체중이 낫다고 얘기를 한다. 괜히 체중 줄이려고 적게 먹고 하다가 식품 다양성에서 벗어나 양질의 섭취를 하지 못하는 것보다 풍성하고 다양하게 먹고 체중을 의도적으로 빼지 않는 게 오히려 건강에 좋다. 특정 질환 때문에 식단을 조절하라고 처방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말이다.”

젊었을 때는 통하는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노년기에는 웬만하면 과체중이 낫다고 얘기를 한다. 괜히 체중 줄이려고 적게 먹고 하다가 식품 다양성에서 벗어나 양질의 섭취를 하지 못하는 것보다 풍성하고 다양하게 먹고 체중을 의도적으로 빼지 않는 게 오히려 건강에 좋다. /조선비즈

참고 자료

The Journal of nutrition, health and aging(2024) DOI: https://doi.org/10.1016/j.jnha.2024.100314

BMJ Open(2020), DOI: https://doi.org/10.1136/bmjopen-2019-035573

JAMA Network Open(2023), DOI: https://doi.org/10.1001/jamanetworkopen.2023.6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