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위스타 연구소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바이러스가 암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낸 노벨상 수상자 프랜시스 페이턴 라우스, 수신인은 33세의 생물학자 레너드 헤이플릭(Leonard Hayflick)이었다.
“세포 배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적절한 환경을 제공한다면 세포는 무한정 복제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의 실험은 주목할 만하지만, 결론은 매우 성급합니다.” 표현은 정중했지만, 메시지는 명확했다. 헤이플릭이 ‘실험 의학 저널’에 투고한 논문을 게재하지 않겠다는 거절이었다. 세계적 학자가 헤이플릭을 세포의 기본도 모르는 초짜 과학자 취급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헤이플릭이 논문에서 과학자들이 절대적인 법칙으로 믿고 있던 사실을 정면으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당시 과학계에선 세포가 영원히 분열하며 증식한다고 여겼다. 세포가 죽는 것은 세포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이나 식이, 태양 복사 같은 외부 요인 탓이고 세포 배양 실패는 배양 방법이나 실험 도구 오염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불멸(不滅)의 세포’ 신화를 처음 만든 것은 프랑스 외과의사 알렉시 카렐이었다. 장기이식을 가능하게 한 삼각봉합법을 개발해 노벨상을 받은 카렐은 1900년대 초 닭의 심장근 세포를 배양했는데, 이 세포는 접시에서 무려 34년간 생존했다. 세포에 무한한 생명을 줄 수 있다는 증거였다. 연구소에서 다른 과학자들에게 배양된 세포를 공급하던 헤이플릭은 수많은 실험 끝에 논문에 이렇게 썼다. “40~60회 분열한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 노화 단계에 접어들어 사멸한다. 분열을 멈추지 않는 것은 암세포뿐이다.” 개별 세포를 관찰한 결과였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세포로 이뤄진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불로장생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없다는 헤이플릭의 주장이 정설이 되기까지는 그 후 10년이 더 걸렸다. 이 세포 노화 현상을 ‘헤이플릭 한계(Hayflick Limit)’라고 부른다. 과학계를 지배하는 도그마(교리)에 맞선 젊은 과학자의 도전이 노화에 대한 인류의 인식을 바꿨다.
그렇다면 신화 탄생 근거가 된 카렐의 닭 세포는 어떻게 그토록 오랜 기간 살아남았을까.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의 얀 위트코프스키는 1985년 논문에서 “실험실 연구원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닭 세포를 카렐도 모르게 배양 접시에 채워넣었을 것”이라고 했다. 조작된 실험에 수십년간 과학계가 놀아났다는 뜻이다. 헤이플릭은 헤이플릭 한계가 일어나는 원리를 설명하지 못했지만 그의 후배 과학자들은 염색체 끝에 있는 텔로미어가 세포가 분열될수록 짧아지고, 닳아 없어지면 사멸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오늘날 대부분의 노화 연구가 텔로미어가 닳지 않거나, 다시 늘어나게 하는 데 맞춰져 있는 이유이다.
헤이플릭이 세포를 배양한 것은 노화 방지나 영생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백신 제조에 쓸 수 있는 안전한 세포를 만드는 것이었다. 1960년대까지 백신은 원숭이 세포를 이용해 만들었는데, 바이러스 오염 등으로 수만 명이 간 질환에 걸리거나 목숨을 잃었다. 헤이플릭은 1962년 스톡홀름에서 낙태된 여성 태아의 폐에서 추출한 세포를 배양해 오염되지 않은 인간 세포주 WI-38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후 WI-38은 풍진·홍역·볼거리·A형 간염·광견병·대상포진 등 수많은 백신의 원료가 됐다. 천형(天刑)으로 여겨지던 천연두를 비롯한 여러 전염병은 아예 박멸시켰다. 미 국립보건원(NIH)은 WI-38이 지금까지 최소 60억회 분량의 백신 제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다. 헤이플릭보다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이가 또 누가 있을까 싶다.
이달 초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헤이플릭은 인간 수명 한계가 125년이라고 했다. 실제로 아직 그보다 오래 산 사람은 없다. 앞으로도 그럴까. 미 식품의약국(FDA)에는 노화를 치료하겠다는 연구소와 스타트업들의 임상 신청이 끊이지 않는다. 헤이플릭 한계를 넘어선 줄기세포, 세포 시계를 거꾸로 돌린 역분화 세포가 개발되는가 하면 아들의 피를 수혈받아 회춘을 시도한 억만장자도 있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은 수천 년 전 진시황 시대나 지금이나 한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