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약사 사노피가 다발성 경화증(MS) 치료제의 임상 3상 시험에 실패하면서 스위스 로슈의 ‘오크레부스(성분명 오크렐리주맙)’가 글로벌 시장에서 1위 자리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사들은 신약 경쟁보다 복제약으로 방향을 잡았다. 4년 뒤 오크레부스 특허 만료를 앞둔 만큼 국내 바이오 업체들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선점에 뛰어들었다.
사노피는 2일(현지 시각)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인 톨레브루티닙을 재발성 다발성 경화증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진행한 결과 유의미한 지표를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번 임상시험에서 사노피의 기존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인 ‘오바지오’와 최대 36개월 동안 재발 감소 비율을 비교했는데, 재발률이 오바지오보다 낮게 나오면서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는 데 실패했다.
다발성 경화증은 주로 20대부터 40대 사이에 발생하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인체의 면역 세포가 외부 침입자 대신 척수나 신경세포를 감싼 보호막인 수초를 공격하면서 발생한다. 시신경염, 급성 척수염, 우울증 같은 증상이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만큼, 재발 빈도를 줄이고 장애 발생을 지연시키기 위해 평생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
전 세계 환자는 25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미국 환자는 약 40만명이며, 유럽은 환자가 70만명이다. 국내에도 다발성 경화증 환자가 약 1800명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18년 200억달러(약 26조700억원)에서 2028년에는 300억달러(약 40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사노피는 오바지오를 2012년 출시해 연 매출 3조원에 달하는 블록버스터 약물로 성장시켰다. 오바지오는 경구용 치료제로 하루에 한 번만 먹으면 돼 편리하지만, 2017년 바이러스 감염으로 뇌에 염증이 생기는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성장세가 꺾였다.
이 와중에 로슈가 6개월에 한번 투약하는 항체 치료제 오크레부스를 내놓으면서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 시장의 선두주자가 됐다. 오크레부스 주사제는 항체 생성을 조절하는 면역세포인 B세포의 단백질(CD20) 수와 기능을 모두 줄인다. 면역계가 신경세포를 공격하는 일을 줄여 다발성 경화증을 억제하는 원리다.
오크레부스는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은 뒤 1년 만에 5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대표적인 블록버스터 약물이다. 2022년에는 약 8조7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오바지오 외에도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BMS)의 ‘제포시아’, 스위스 노바티스의 ‘길레니아’, 미국 바이오젠의 ‘텍피데라’ 등 경쟁 약물을 제치고 현재 전 세계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 시장에서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여러 대형 제약사들의 노력에도 오크레부스가 강자 자리를 유지하자 국내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들도 오크레부스 복제약 개발에 나섰다. 오크레부스의 주요 물질특허는 미국에서 지난해 12월 만료됐으며, 주요 용법이나 용량 관련 특허는 오는 2029년 만료될 예정이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10월 오크레부스의 바이오시밀러인 ‘CT-P53′의 미국 임상 3상 시험을 시작했다. 다발성 경화증 환자 512명을 대상으로 CT-P53과 오크레부스 간의 유효성과 안전성 등을 비교하는 방식이다. 임상 기간은 치료기간인 96주로 내년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알테오젠의 자회사인 알토스바이오로직스도 오크레부스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돌입했다. 회사는 정맥주사제형인 오크레부스를 피하주사(SC) 제형으로 개발해 기존 제품과 동등한 효과와 안정성을 확인했다. 지난해 8월에는 SC 제형의 용법과 용량에 대한 특허를 국제출원했다.
알토스바이오로직스에 따르면 오크레부스는 효과는 높지만 대용량이어서 한 번 투여하는 데 최대 3.5시간 가량 걸리고, 첫 투여 시 약물주입 관련 부작용 발생이 약 30%에 달한다. 회사는 현재 로슈가 개발 중인 오크레부스의 SC제형과는 다른 독자적인 방식으로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신약 개발을 추진하는 국내사도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파킨슨 치료제로 개발 중인 ‘NLY01′을 다발성 경화증을 적응증으로 한 임상 2상 시험에 대한 계획을 FDA로부터 승인받았다고 3일 밝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다발성 경화증 센터와 공동 개발 중이다. 에이프릴바이오도 최근 면역질환 치료제 ‘APB-A1′을 다발성 경화증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