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3위(상반기 매출 기준) 한미약품그룹은 올 들어 창업주 일가의 경영권 분쟁에 휩싸여 있다.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산업 사상 최대 규모인 5조원대 신약 기술 수출 계약(2015년)을 비롯해 국내 신약 R&D(연구·개발) 역사를 써온 제약사다. 2020년 임성기 창업주 별세 후 배우자인 송영숙 회장과 딸 임주현 부회장 중심으로 경영돼 왔다. 하지만 54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녀가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하자, 장남 임종윤 이사와 차남인 임종훈 사장이 반발하며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이러한 경영권 분쟁에서 ‘키 맨(key man)’으로 떠오른 인물이 한미의 개인 최대 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다. 그는 지난 3월에는 형제 측을, 그리고 지난 7월부터는 모녀 측을 지지하고 있다. 신 회장이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경영권이 바뀔 수밖에 없는 지분 구조다. 신 회장은 지난 2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한미약품그룹의 향후 경영권과 관련한 입장을 처음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는 “한미그룹의 존속을 위한 ‘백기사(우호 주주)’ 역할은 할 만큼 했고, 이제 경영권을 적극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단순히 최대 주주로서가 아니라 한미약품그룹의 주요 현안 결정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아래는 신 회장과의 일문일답.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은 2일 본지 인터뷰에서 “형제 편도, 모녀 편도 아닌 한미약품그룹의 편에서 결정을 해온 것”이라며 “이제 경영권을 적극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한양정밀

-한미그룹 개인 최대 주주가 된 계기는.

“창업주인 고(故) 임성기 회장과 동향(김포)에 고교(통진고) 후배로 30년 전에 ‘의형제’를 맺었다. 한미약품이 동신제약을 인수할 때 임 회장 요청으로 동신제약 지분을 매집해 넘겨준 것을 계기로 한미 지분 보유를 늘려간 것이다.”

-지난 3월 주총에서 형제 편에 섰다 7월에는 모녀와 손을 잡은 이유는?

“형제 편을 든 게 아니라, 한미그룹 입장에서 결정을 내린 것이다. 3월 주총에서 형제를 지지한 이유는 국내 다른 기업이 사실상 한미를 이끌게 되는 구조여서 통합안에 반대한 것이다. 7월에 대주주 연합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형제 측의 외자 유치 추진이 일방적이었고, 당시 주가 하락 추세가 창업주 일가 전체의 경영권에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신 회장은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 약 6.5%(444만4187주)를 매입하고, 공동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약정 계약을 체결했다. 3일 신 회장 측 지분은 18.93%로 한미사이언스 최대 주주가 됐다.

-형제가 경영권을 잡은 뒤 주가가 30%가량 떨어져 등을 돌린 것 아닌가.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3만원 아래로 떨어지고 2만8000원대로 가면 송 회장을 비롯해 창업주 일가가 지분 상당수를 잃을 위기였다. "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상황에서 주가가 급락하면 담보 가액이 줄어 반대매매(융자 상환을 위한 강제 매각)가 이뤄진다. 신 회장은 이렇게 창업주 일가 주식이 매물로 나오면 주가는 더욱 폭락해 창업주 일가 모두가 경영권을 잃고 그룹 전체가 흔들려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일단 한미를 구하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자금을 마련해 3자(송영숙·임주현·신동국) 대주주 연합으로 경영권을 지킨 것이다. 그렇게 했는데도 주가는 2만7000원대까지 떨어졌다. 대주주 연합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한미가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경영권이 안정되면 신 회장이 보유 지분을 매각하고 한미를 떠날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팔지 않겠다고 공언할 수 있다. 나는 한미 창업주의 가족과 다름없다.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한미 지분 매각하고 나가는 일은 없으니 임직원과 주주 모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형제 측은 신 회장이 외자 투자 유치를 방해한다고 한다.

“주총 직후 형제 측이 외자 유치를 하겠다고 해 관여는 안 하지만 상의는 하자고 했다. 하지만 일절 상의가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외자를 들여오려 한다는 소문이 무성해 한 증권사를 찾아가 진행 상황을 물어봤다. 형제 측이 내 주식 매각을 전제로 거래를 추진하고 있었다. 내 주식을 왜 마음대로 거래 조건에 넣느냐고 따졌다. 최대 주주인 나를 완전 배제하고 외국 자본 투자를 받으려고 하는데,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본인들의 개인 부채를 탕감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반대한다고 했더니 신 회장이 투자를 방해하고 다닌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형제와 소통은 계속하고 있나.

“임종윤 이사와는 10여 차례 만났다. 가족들 생각이 서로 너무 다르고, 골이 너무 깊으니 어떻게든 봉합을 해서 다 살리려고 했다. 모녀와 지분 거래를 하고서도 만났다. 임종훈 대표에게는 한미사이언스 대표를 계속 맡는 것은 여러 상황으로 봤을 때 혼란스럽고 가족 화합이 안 되니 물러나고, 다른 회사를 맡아달라는 뜻을 전했다. 임 대표가 생각해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아직 답이 없다.”

지난 2일 열린 한미약품 이사회에서 임종윤 이사를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이 부결됐다. 이날 신동국 회장도 이사회에 참여해 해당 안건에 반대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가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에 위탁해온 인사·법무 조직을 한미약품 내에 신설해 독자 경영을 하겠다고 밝히자,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같은 날 박 대표를 사장에서 전무로 강등시켜 대립이 심해졌다. 이때 임종윤 이사는 본인을 한미약품 대표에 올리는 안을 상정하기 위해 이사회 소집을 요구했다.

그래픽=백형선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 모두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한다고 보는가.

“그렇다. 한미약품은 지금처럼 박재현 대표로 가고, 한미사이언스도 임종훈 대표가 물러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한다. 임종훈 대표가 10% 안팎 지분으로 전체를 이끄는 것을 임직원과 주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한미그룹에 직책을 가질 계획은 있나. 회장직을 맡는 것 아니냐는 말도 많다.

“송 회장이 앞으로 신 회장 중심으로 회사가 운영돼야 한다고 했지만, 회장직을 맡기는 부담스럽다. 내가 임성기 회장이 일궈놓은 한미그룹의 회장 자리에 앉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 이사로 들어갈 것이다.”

-건설기계와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한양정밀 창업, 경영이 한미약품그룹 경영과는 다르지 않나.

“제조업을 하면서 숱한 위기를 견뎌왔고, 제조업 경영의 노하우를 제약 바이오 R&D(연구 개발)와 접목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최근 FDA(미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은 항암 신약 개발 회사 경영진은 바이오벤처와 협력하기 위해 500곳 이상을 다녔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제약 바이오 R&D를 선도해온 한미그룹이 경쟁사를 제치려면 경영진이 발로 뛰는 열정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