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막스 블록

야생 고릴라가 먹는 열대 식물이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열대 식물의 추출물은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를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어 앞으로 신약 개발에 사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레레셰 이븐 도네일리 오야바 빈다(Leresche Even Doneilly Oyaba Yinda) 가봉 프랑스빌의학연구센터 박사 연구진은 “고릴라가 먹는 열대 식물 4종의 약효를 분석한 결과, 항산화와 항균 작용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를 11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가봉의 무칼라바-두두 국립공원의 서쪽 저지대에서 고릴라가 먹는 나무껍질에 주목했다. 고릴라가 먹는 열대 식물은 케이폭나무(학명 Ceiba pentandra)와 노란 뽕나무(Myrianthus arboreus), 아프리카 티크나무(Milicia excelsa), 무화과나무(Ficus)이다. 원래 이 나무들은 가봉 전통 의학에서 위장병부터 불임까지 대부분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됐다. 연구진은 고릴라도 식물을 치료용으로 쓴다고 생각했다.

야생 유인원이 식물을 이용해 스스로 치료하는 모습은 이전에도 발견됐다.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 연구진은 지난 5월 인도네시아 밀림에 사는 오랑우탄이 약초를 이빨로 으깬 뒤 상처에 발라 치료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오랑우탄이 바른 아카르 쿠닝(Fibraurea tinctoria)이라는 식물의 잎은 항균과 항염증에 효과가 있었다.

고릴라가 씹는 열대 나무들의 껍질도 항균과 항산화에 뛰어났다. 구체적으로 케이폭나무과 노란 뽕나무 껍질 추출물은 대장균을 억제하는 효능을 보였다. 이 중 노란 뽕나무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대장균 억제도 가능했다. 아프리카 티크나무는 폐렴균과 패혈증을 일으키는 녹농균에 항균 활성을 보였다.

노화와 질병의 원인인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작용도 일어났다. 무화과나무 껍질 추출물은 1mL당 0.2㎎ 정도의 농도만으로 활성산소를 50% 이상 줄였다. 특히 케이폭나무는 1mL당 10~50㎍(마이크로그램·1㎍은 100만분의 1g) 정도의 추출물로 활성산소를 줄이는 효과를 나타냈다. 활성산소는 다른 물질과 반응을 잘 하는 산소로, 인체에서 강력한 산화작용으로 각종 질병과 노화현상 등을 일으킨다.

나무껍질 추출물이 항생제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를 억제하는 건 플라보노이드와 타닌, 알칼로이드, 쿠마린 같은 2차 대사산물 때문이다. 슈퍼박테리아는 외부에 복잡한 세포막 구조가 있어 항생제가 침투하기 어려운데, 플라보노이드와 타닌은 박테리아의 외부 막을 손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알칼로이드와 쿠마린은 박테리아의 단백질과 유전물질인 DNA, RNA의 합성·복제를 방해해 세포 분열을 막는다.

연구진은 고릴라가 섭취한 나무껍질이 항생제 내성 문제를 막을 신약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생제 내성이 세계적인 공중보건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있다. 2019년에만 항생제 내성으로 전 세계에서 127만 명이 사망했다. 한국 질병관리청도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 대책을 만들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의 목적은 동물약리학 접근 방식으로 항균제 내성 문제에 대한 잠재적인 대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박테리아 기반 감염병에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하는 데에 개량 전통 의학이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참고 자료

PLoS ONE(2024),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306957

Scientific Report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4-589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