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공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며 미국 조지아공대 종신 석좌교수인 중국계 과학자 왕중린(63)이 중국으로 돌아가 중국과학원(CAS) 산하 연구소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왕 교수는 바람·물결의 진동이나 옷의 마찰 등을 전기로 전환하는 ‘나노 발전(發電)’의 최고 권위자다. 세계 상위 논문 피인용도 2% 내 연구자를 선정하는 ‘엘스비어·스탠퍼드 세계 상위 2% 연구자’에 올해까지 5년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하며 ‘나노 발전기의 아버지’로 불린다. 왕 교수뿐 아니다. 최근 중국 정부가 미국을 비롯해 해외 과학자 영입에 공을 들이면서 중국 출신 과학자들이 속속 본국으로 귀국하고 있다. 미국이 첨단 기술의 중국 유출을 통제하자, 중국 정부가 자체 기술 확보를 위해 자국 출신 고급 두뇌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년 이후 보장’도 버리고 중국행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왕 교수가 중국과학원(CAS) 산하 베이징 나노 에너지 및 시스템 연구소(BINN)에서 근무 중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기사에는 왕 교수가 중국의 젊은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하는 사진도 실렸다. 그는 2009년 햄스터의 미세한 움직임을 전류로 바꾸는 나노 발전기를 개발했고, 이는 불규칙적인 생체 운동을 전기에너지로 바꾼 최초의 사례로 주목받았다.
왕 교수의 중국 귀환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의 명성뿐 아니라 연구 분야 때문이다. ‘마찰 전기 나노 발전’은 일상의 작은 움직임을 전기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다. 버려지는 에너지를 활용해 각종 전자 제품을 가동할 수 있어, 미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핵심 기술로 꼽힌다. SCMP는 “나노 과학기술은 국방, 에너지, 의학, 산업 등에 광범위한 적용이 가능해 각국 정부가 관심을 쏟고 있다”며 “중국 정부가 왕 교수에게 전폭 지원을 약속하며 중책을 맡긴 것”이라고 했다.
중국계 과학자들의 본국 귀환 움직임은 최근 뚜렷해지고 있다. 재료 공학 석학인 가오화젠 스탠퍼드대 교수도 올해 초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심장병 환자의 회복을 돕는 ‘스마트 패치’와 약물에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는 생체의학 소재를 개발하는 등 바이오·의학 부문 소재에서 혁신적인 성과를 내며 세계적 권위의 과학상들을 휩쓸었다. 칭화대로 돌아간 그는 중국 귀국 당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후배 연구자들이 자신감과 열정을 갖고 최첨단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천재들의 상으로 불리는 미국 ‘맥아더 펠로’를 받은 쿤량관 미국 UC샌디에이고 약대 교수, 실리콘밸리 노벨상으로 불리는 ‘브레이크스루’ 뉴허라이즌상을 받은 쑨 쑹 UC 버클리 수학과 교수 등 각 분야 학자들도 작년과 올해 중국으로 돌아갔다. 한 국내 과학계 관계자는 “예전에도 중국 과학·기술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었지만, 박사 학위 취득 직후인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최근엔 미국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고 명성도 쌓은 석학들이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상위 오른 中 연구 기관
중국계 해외 유명 과학자들이 중국으로 돌아오는 데는 중국 연구 기관의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오른 것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과학 연구 역량을 평가하는 대표 지표로 꼽히는 ‘네이처 인덱스’ 순위에서 중국은 올해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과학 논문 성과는 향후 상용화할 과학기술의 선행 지표로 통한다.
네이처 인덱스에서 중국과학원은 하버드대를 제치고 연구 기관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세계 상위 10곳 중에서 7곳이 중국 대학·기관으로 집계됐다. 중국 과학 연구 기관이 세계 최상위 수준인 것으로 입증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의 중국계 과학자 견제도 이들의 중국 복귀에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행정부 때 ‘차이나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방첩(스파이 색출 등) 계획 등이 중국 과학자들을 겨냥해 중국 과학자들의 영구 귀국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미 스탠퍼드대 중국 경제·제도 연구 센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미국을 기반으로 연구 활동을 해온 중국 과학자들 귀국 비율은 2010년 48%에서 2021년 67%로 늘었다. 바이든 행정부 때 중단됐던 ‘차이나 이니셔티브’ 관련 법안이 지난 11일 미 하원을 통과해 법제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의 중국계 과학 인재의 중국 복귀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왕중린(王中林)
’나노발전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나노 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 ‘세계 상위 2% 연구자’ 리스트에서 최근 5년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했다. 환경·에너지 분야 노벨상으로도 불리는 ‘에니상(Eni Awards)’,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세계 과학자상 등을 수상했고 미국 조지아공대 종신 석좌 교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