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시행된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 1주년을 맞아, 산·학·연 전문가가 법 시행의 성과와 향후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전략기술을 효과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현행 정책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2일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국가전략기술 특별법 시행 1주년 기념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정부는 2022년 대통령 주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에서 국가가 반드시 확보할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연구개발(R&D) 투자와 정책을 집중 지원해왔다. 행사의 개회사를 맡은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중심으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며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성과 연구, 산업 현장과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통해 국가전략기술 R&D를 총괄,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날 연사로 나선 각 분야 전문가들은 국가전략기술의 확대를 위해 보다 정교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조강연자로 나선 김성근 포스텍 총장은 “국가전략기술 특별법은 마치 모범생이 열심히 공부해 쓴 것 같은 좋은 답안이지만 한계가 있다”며 “중요한 기술이라 생각되는 영역은 모두 총망라되어 있지만, 선택과 집중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12개 기술을 선정해 지원하는 것이 현명한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기술 목록보다 세부 기술에 대한 계획이 더 중요하다”며 “핵 기술만 보더라도 그 안에 수많은 세부 기술이 있는데, 그중에 무엇에 집중할지 깊이 있는 논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마일스톤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김 총장은 “점점 연구 단계에서 상업화로 진입하기까지의 간격이 짧아지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대학이나 연구소, 정책기관에서 이를 주도했지만 이제는 민간 기업, 시장으로 넘어가야 한다. 민간이 이끌어야 전략기술에서 전략산업으로 원활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정부에게는 모든 것이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과거 사례를 바탕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기술 운용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도 말했다. 김 총장은 “불과 8년 전 빅테크 기업들은 인공지능(AI)이 이 정도로 세상을 바꿀 거라고 예상치 못했다”며 “정부는 10년 뒤에도 전략 기술일지 면밀히 검토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면서 인력 양성도 계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AI·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기술의 3대 게임체인저 기술을 중심으로 산학연 연계와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에서는 정부가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AI를 연구하는 최재식 인이지 대표 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한국은 개인 정보에 대한 소유권이 다른 나라보다 강하다고 들었다”며 “AI 육성을 위해서는 민감한 데이터는 제외한 학습용 데이터를 허용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에게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미래혁신전략연구본부장은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뿐 아니라 여러 정책과 규제가 한꺼번에 같이 갈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규제가 신산업이 가는 속도와 맞춰 개편돼야 하고, 동시에 국가 인재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인력을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