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제약이 오너 일가 3세 단독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오너 경영 체제 확립을 위해 실적 성장과 기업 가치 부양에 주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1947년 설립된 삼일제약은 안과 영역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제품군을 보유한 제약사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어린이 해열제 부루펜도 이 회사가 생산한다.
2일 이 회사에 따르면, 전문경영인인 김상진 대표이사가 일신상 사유로 지난 9월 30일 사임했다. 이로써 3년여 만에 오너 3세 허승범(43·사진) 대표이사·회장 단독 경영 체제로 바뀐 것이다.
허승범 회장은 창업자 고(故) 허용 명예회장 손자이자 허강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그가 단독으로 경영을 이끄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삼일제약은 지난 2021년 3월부터 허 대표와 전문경영인 김상진 대표이사·사장과 각자 대표 체제로 운영돼 왔다. 이번에 사임한 김상진 전 대표는 서울대 약대를 졸업했으며, 한독 부사장을 역임했다.
업계에선 삼일제약이 경영 승계 작업을 이어온 만큼 오너 3세 경영 체제는 예견된 것이란 해석도 잇따른다. 허 대표는 2005년 삼일제약 마케팅부에 입사해 기획조정실장, 경영지원본부장 등을 거쳤다. 지난 2013년 아버지 허강 회장과 함께 처음 대표를 맡았다. 이후 2018년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2022년에는 회장으로 승진했다.
허 명예회장의 차남 허준범(38) CHC(컨슈머헬스케어)사업본부장도 작년 연말 임원 인사를 통해 전무로 승진했다. 올해 6월 말 기준 허승범 회장의 지분율은 8.01%다. 2대 주주는 지분 6.73%를 보유한 아버지 허강 명예회장이다.
시장에선 삼일제약이 허승범 회장의 단독 대표 체제하에 사업 확장과 실적 성장에 주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베트남 점안제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허 회장 주도하에 글로벌 생산기지로 베트남을 삼고, 약 1000억원을 투입해 지난 2022년엔 현지 공장 준공을 했다.
최근 GMP(우수 의약품 제조·관리 기준) 인증을 위한 베트남 의약품청 실사를 지난 7월 마쳤다. 실사 이후 빠르면 3개월 이내 세계보건기구(WHO) GMP 인증을 획득하는데, 이 관문을 넘으면 베트남과 다른 해외 국가로 의약품을 생산·판매할 수 있다. 삼일제약이 이미 글로벌 제약사들과 점안제 CMO 생산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영업·마케팅 부문 총괄 사장으로 신유석(51) 전 동아에스티 해외사업부장을 영입한 것도, 해외 사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풀이된다. 서울대 약대 출신인 신유석 신임 사장은 1999년 한국 화이자제약에서 평사원을 시작으로 GSK 코리아 CNS 마케팅팀장, GSK 타이완 마케팅 임원을 거쳐 2010년 동아에스티로 옮겨 영업 마케팅과 글로벌 사업을 이끌었다.
삼일제약은 올해 5월부터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아필리부’를 판매 중이다. 두 회사는 지난 2월 아필리부의 국내 판권에 대한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다. 미국 엘러간의 오리지널 점안액 제품인 ‘레스타시스’ 등도 국내에서 독점 판매 중이다. 작년 출시한 망막질환 치료제 바이오시밀러 ‘아멜리부’와 자체 개발 안구건조증 개량 신약 ‘레바케이’도 실적 성장을 이끌 주요 제품으로 꼽힌다. 이 회사가 2021년 3월 국내 독점 판권을 확보한 미국 바이오스플라이스의 골관절염 치료제 후보 물질 ‘로어시비빈트’가 올해 하반기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허가 신청을 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최재호 하나증권 연구위원은 “삼일제약이 연말 다양한 모멘텀(동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돼 주목할 시기”라면서 “내년은 신규 상품의 시장 안착과 베트남 CMO 공장 본격 가동 등에 따른 실적 고성장에 주목할 시점으로 판단한다”고 의견을 냈다.
한편 이 회사의 작년 매출액은 1963억원으로 전년보다 9.3% 늘었고, 영업이익은 63억원으로 전년보다 56.1% 늘었다. 당기 순이익은 21억원으로 3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