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인간의 유전정보를 담은 염색체 끝에 있는 텔로미어(telomere)가 길이를 유지하는 원리를 밝혔다. 텔로미어는 인간의 유전정보를 담은 염색체의 끝에서 세포가 분열할 때 염색체가 분해되는 것을 막아준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즉 나이가 들수록 텔로미어는 짧아진다.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세포 노화와 사멸, 암 발생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진은 “예쁜꼬마선충과 생쥐 모델을 통해 텔로미어의 길이를 유지하는 전략인 ‘대안적인 텔로미어 유지 방식(ALT·Alternative lengthening of telomere)’을 밝혀냈다”고 2일 밝혔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부분에 있는 DNA-단백질 복합체다. 세포분열 시 DNA가 안전하게 복제되도록 보호하는 마개 역할을 하면서, 세포분열을 거듭할수록 점점 닳아 짧아진다. 즉, 텔로미어는 스스로 희생하면서 유전 정보를 보호한다. 텔로미어가 일정 수준 이하로 짧아지면 더 이상 염색체를 보호하지 못하고 세포가 노화해 죽는다.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유전 정보가 심각하게 망가지면서 세포가 암세포로 변한다.
세포 대부분은 텔로미어를 유지하기 위해 텔로머레이스(telomerase)라는 효소를 사용한다. 그러나 일부 세포들은 이 효소가 아닌, 다양한 유전자들의 상호작용인 ALT를 이용해 텔로미어를 복구하고 세포분열을 지속한다. 암세포의 경우에도 텔로머레이스나 ALT를 활성화해 텔로미어를 유지, 세포분열이 계속해서 일어나도록 만든다. 이 과정을 잘 이해하고 ALT를 조절하는 방법을 찾아내면 텔로미어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다양한 유형의 ALT를 찾았다. 우선 효모에서 처음 발견됐던 유형 1 ALT를 예쁜꼬마선충에서 찾았다. 예쁜꼬마선충은 텔로머레이스가 없어도 ALT로 텔로미어를 유지할 수 있음이 처음으로 밝혀진 다세포 진핵생물이다. 연구진은 예쁜꼬마선충의 텔로미어를 관찰해, ALT가 단순한 반복서열이 아닌 독특한 서열로 이뤄져 있음을 알아냈다.
이어 연구진은 생쥐배아줄기세포에서는 유형 1과 유형 2 ALT를 발견했다. 그리고 유전체와 전사체, 단백질체, 후생유전체 등을 모두 분석해 두 가지 유형이 유전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두 유형의 ALT가 유전체 안정성 유지 능력, 유전자 발현 네트워크의 변화, 텔로미어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유전자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포유류 모델에서 ALT의 두 유형을 발견한 것은 세계 최초다.
연구진은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유형1 ALT 유전체 지도를 완성했다. 이를 통해 ALT의 복잡한 구조적 변이들을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었다. ALT에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구조적 변이 1000여 개를 찾았다. 또한 텔로미어 내 독특한 서열이 염색체 끝부분을 보호할 뿐 아니라 DNA 손상을 복구하는 능력도 있음을 추정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 최초로 ALT의 유전체 지도를 완성하고 독특한 특징을 밝혀냈다”며 “이를 통해 세포가 어떻게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하도록 진화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유전체 보존 프로그램은 물론, 노화와 암 발생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핵산 연구(Nucleic Acids Research)’ 10월호에 실렸다.
참고 자료
Nucleic Acid Research(2024), DOI: https://doi.org/10.1093/nar/gkae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