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주위에 정자들이 모인 모습의 일러스트. 일본 과학자들이 정자 없이 혈액 검사로 남성의 생식능력을 알아보는 AI 검사법을 개발했다./Adobe Stock

구글 딥마인드 연구진에게 노벨 화학상의 영광을 안겨준 단백질 구조 예측 인공지능(AI) ‘알파폴드(AlphaFold)’가 정자와 난자의 결합이라는 오랜 비밀을 푸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았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분자병리학연구소(IMP) 연구진은 지난 17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셀(Cell)에 알파폴드를 이용해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 번째 단백질을 찾았다고 밝혔다.

정자와 난자의 만남은 생명의 출발을 의미하지만, 여전히 이 중요한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과학자들은 모르는 게 많다. 두 세포가 어떻게 서로 달라붙고 융합되면서 유전 물질을 공유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지금까지 정자와 난자의 결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된 단백질은 두 개였다. 2005년 일본의 한 연구팀은 쥐의 특정 유전자를 삭제하면 건강해 보이는 운동성 정자를 만들 수 있지만 정작 난자 세포와 융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 유전자에 결혼식을 여는 신사를 따서 ‘이즈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9년이 지나서 영국의 한 연구팀은 난자 표면에서 정자를 잡아당기는 단백질을 찾아냈다. 이 단백질은 로마 신화 속 다산의 여신의 이름을 따서 ‘주노’라고 불렸다. 이즈모와 주노가 발견된 이후 과학자들은 정자와 난자의 결합에 영향을 주는 제 3의 단백질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10년 동안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AI 기술이 등장하면서 돌파구가 생겼다. 구글 딥마인드 연구진이 만든 알파폴드는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다.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48)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존 점퍼(John Jumper·39) 딥마인드 수석연구원은 알파폴드를 개발한 공로로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IMP 연구팀은 알파폴드를 이용해 세 가지 단백질이 짝을 이뤄서 정자와 난자 사이에서 중매자 역할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 세 가지 단백질 가운데 두 가지는 이미 생식 능력에서 중요한 것이 확인됐지만, 마지막 세 번째 단백질인 ‘Tmem81′의 존재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IMP의 분자생물학자 안드레아 폴리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알파폴드가 식별한 단백질 복합체가 실제로 존재하는 지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제브라피쉬와 생쥐에서 ‘Tmem81′ 유전자를 삭제했고, 이즈모처럼 앞서서 생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삭제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정자 결함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

과학계는 이번 발견이 불임 환자나 새로운 피임 방법을 찾는데 모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로마대학교의 생식생물학자인 엔리카 비앙키 교수는 “수정에 관여하는 단백질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불임 환자의 돌연변이에 대해 더 상세하게 검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분자병리학연구소(IMP)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셀(Cell)에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 번째 단백질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를 이용해 연구를 진행했다./Research Institute of Molecular Pathology (IMP)

참고 자료

Cell(2024), DOI : https://doi.org/10.5281/zenodo.13759442

eLife(2024), DOI : https://doi.org/10.7554/eLife.93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