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 신약인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의 국내 출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됐다. 유럽에 이어 호주도 이런 이유로 레켐비의 승인을 거절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환자가 편하게 투여 방식을 바꿔 실적을 올리려는 업체들의 움직임에도 제동을 걸었다. 업계는 세계 시장에서 레켐비의 판매 실적이 부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호주 식품의약품청(TGA)은 지난 16일(현지 시각) 레켐비가 뇌부종, 뇌출혈 등 부작용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승인을 거절했다. 지난 7월 유럽의약품청(EMA)의 허가 거절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불허 결정이다. 에자이·바이오젠은 현재 유럽과 호주에 재검토를 요청한 상태다.
레켐비는 경증 알츠하이머병과 경도인지장애 환자 치료를 위한 치매 신약이다. 에자이·바이오젠이 2021년 공동 개발한 아두헬름(아두카누맙)에 이어 FDA가 두 번째로 승인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비정상 아밀로이드 베타(Aβ) 단백질이 뇌에 뭉쳐지는 것을 막는 원리다. 현재 레켐비는 미국과 한국·일본·영국·이스라엘 등에서 승인됐으며, 미국·일본·중국은 이미 시판을 시작했다. 한국은 오는 12월 출시를 앞두고 있다.
레켐비의 부작용은 뇌부종과 뇌출혈이 대표적이다. 이는 레켐비의 임상 3상 시험 결과에도 나타났다. 레켐비는 투약 환자들의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27% 늦췄지만, 전체 13%가 뇌부종을 경험하고, 17%가 뇌출혈을 겪는 부작용이 확인됐다.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에 따르면 치료군 10명 중 3명 꼴로 부작용을 경험했고, 전체 치료군의 6.9%는 부작용으로 치료를 중단했다.
FDA 승인 당시 혁신 치매 신약으로 높은 기대를 받았던 것과는 달리 부작용 사례가 나오면서 시장 확장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매출이 예상보다 저조하고 유럽·호주 허가 실패라는 돌발 변수도 생겼다. 미국 제약 전문지인 피어스파마는 “바이오젠의 2분기 미국 매출이 3000만달러(413억원)에 그쳐 성장 속도가 주춤했다”며 “EMA의 레켐비 승인 거절은 유럽 시장 진출을 무산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환자의 투약 편의성을 높여 매출을 늘리려는 에자이·바이오젠의 노력도 결실을 맺기 쉽지 않다. 두 회사는 기존에 승인받은 정맥 투여(IV) 요법에 더해 피하 투여(SC) 요법도 FDA에 승인을 신청했지만, FDA가 안전성 데이터를 추가로 요구하면서 양사의 예상보다 숭인이 늦춰질 예정이다. 정맥 투여는 2주 간격으로 병원에서 이뤄지지만 피하 투여는 주 1회 자가 투여하는 방식으로, 승인될 경우 투여 환자가 늘 수 있다.
레켐비가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약물 낭비 논란이다. 지난 14일 ‘미국 의사협회 저널(JAMA) 내과학’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일회용 바이알(유리병)로 공급되는 레켐비는 5.8%가 버려지며, 이로 인해 연간 3억3600만달러(한화 4600억원)의 비용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의대 연구진은 레켐비가 환자 체중에 따라 200㎎, 500㎎ 두 개의 용량으로 공급되는데, 1㎏당 10㎎를 투여해야 하는 만큼 버리는 약물의 양이 많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500㎎의 바이알을 250㎎ 바이알로 바꾸면, 버려지는 비율이 5.8%에서 3.2%로 줄어 연간 1억 5500만달러(2135억원)가 절감된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에자이·바이오젠에 공급 바이알 용량 변경을 요구했고, 양 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켐비 관련 논란은 국내에서도 있었다. 지난 10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국정감사에서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식약처가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약심위)의 별도 전문가 조언 없이 레켐비를 허가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20일 “모든 신약을 출시할 때 약심위가 필수인 것은 아니다”라며 “필요에 의해 약심위 개최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참고 자료
JAMA Internal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001/jamainternmed.2024.5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