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를 이루는 약 37조개 세포 지도의 토대가 완성됐다. 102국 360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모인 ‘인간 세포 아틀라스(HCA)’ 컨소시엄은 2016년부터 진행해온 인체 세포의 기능에 대한 연구 성과를 종합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와 자매지에 40여 편의 논문으로 공개했다. 세포는 생명체의 기본 구성 요소로, 우리 몸에는 3000종이 넘는 세포 유형이 존재한다. HCA는 유전체학과 인공지능(AI)을 결합해 각 세포의 기능과 역할을 나타내는 지도를 그리고 있다. 학계에서는 각 세포의 기능을 파악하면 질병의 원인을 조사하고 치료하는 데 결정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 몸의 세포 지도 그렸다
HCA는 전 세계 9100명으로부터 추출한 약 6200만개의 세포를 조사했다. 세포는 생명체의 몸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지만 사람 몸이 정확히 몇 개의 세포로 구성되는지,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 각각의 세포는 얼마나 다른지 등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HCA는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의 종류, 위치, 기능까지 모두 파악한 지도를 그리는 것이 목표다. 건강한 인체의 ‘참조 지도’를 만들어서, 특정 질환자의 세포와 비교하면 어떤 세포가 질환을 일으키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신경계부터 심장, 소화기, 근골격 등에 이르는 18개 부분의 세포를 수집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포스텍 등 국내 연구진도 참여하고 있다. HCA 창립 공동 의장인 세라 테이크만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조직 내의 유전자와 세포에 대한 이해를 통해 보다 정확한 진단, 혁신적인 약물 발견 등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연구 성과 중 하나는 장 염증을 악화시키는 세포를 발견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189명의 사람들로부터 약 110만개의 세포를 채취해 입에서부터 식도를 거쳐 위, 장, 항문까지 이어지는 위장관의 세포 지도를 그렸다. 그리고 이 지도와 궤양성 대장염, 크론병 등 위장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세포를 비교했다. 그 결과 점막 조직 구조를 바꾸고, 장 염증을 악화시키는 특정한 줄기 세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세포를 연구하면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만성 염증 질환) 등을 치료하는 단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 골격이 형성되는 과정 역시 규명됐다. 연구팀은 임신 초기 5~11주 기간 동안 배아와 태아의 두개골과 사지 관절이 발달하는 과정을 지도로 그려냈다. 이를 통해 신생아의 두개골이 너무 빠르게 닫혀 뇌의 발달이 막히는 ‘두개골 조기 유합증’을 유발하는 세포를 찾아냈다. 또 초기 뼈 세포 발달과 연골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성인이 된 이후의 관절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면역세포를 생성하는 기관인 흉선에 대한 세포 지도를 통해서는 우리의 면역 체계가 임신 초기에 확립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종은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인간 세포 지도를 통해 질병의 발생과 진행 기전을 이해할 수 있다”며 “신약 개발과 환자별 맞춤형 치료법 개발의 단초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AI와 생물학의 결합
이처럼 상세한 지도를 그리게 될 수 있는 것은 단일 세포와 유전자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한 덕택이다. 우리의 세포는 모두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지만 각자의 역할과 기능이 모두 다르다. 2만여 개의 유전자 중 일부만 발현되기 때문이다. 세포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는 단일 세포를 분석해 어떤 유전자가 작동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단일 세포 시퀀싱’ 기술이다. 정인경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이전까지는 조직 단위에서만 분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각 세포의 기능이나 유전자량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단일 세포 수준의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더 높은 해상도의 지도 제작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해 막대한 양의 세포들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데 이용했다. HCA 공동 창립자인 아비브 레게브 박사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세포가 전통적인 세계지도였다면, 이제는 자세한 지형, 거리 등이 포함된 고해상도의 ‘구글 지도’를 구축한 것”이라고 했다.
HCA는 유사한 세포를 검색하는 새로운 분석 도구와 데이터 통합 분석 기능 등을 추가로 개발했다. 이를 토대로 2026년까지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인체 전체의 지도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인간 세포 지도(Human Cell Atlas)
37조개에 달하는 모든 인체 세포의 종류, 상태, 위치, 기능 등을 분류한 것. 102국 3600명 이상의 과학자가 약 6200만개의 세포 지도를 그리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세포 지도를 그리면 질병의 원인이나 치료법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