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안쪽 산을 따라 비탈길을 굽이굽이 올라가자 거대한 터널 입구가 보였다. 길이 540m, 깊이 120m, 지름 6m에 달하는 인공 동굴인 ‘지하처분 연구시설(KURT)’이다. 이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는 시설에 필요한 기술을 연구하고 실증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핵연료들은 원전 내에 보관되고 있지만, 2030년부터는 이 저장고들이 순차적으로 꽉 들어차게 된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설(방폐장) 건설이 논의되고 있다.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내부에 있는 인공 동굴 ‘지하처분 연구시설(KURT)’의 입구(위쪽). 깊이 120m에 달하는 이 동굴 내부에서 김진섭 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사용후핵연료 보관 용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아래쪽). /박지민 기자

김진섭 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실제 방폐장은 500m 깊이에 지어진다”며 “이에 앞서 120m 지하의 KURT 환경에서 사용후핵연료 보관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터널을 따라 내려가자 지름 90㎝ 금속 용기가 눈에 띄었다. 값싼 주철로 만든 용기 외부를 구리로 감싼 구조다. 이 용기를 점토 물질인 벤토나이트로 감싸고, 기타 암반 등을 섞어 만든 흙을 위로 얹는다. 내부에는 섭씨 100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히터를 넣어 사용후핵연료와 방사성폐기물을 대신했다. 일종의 모의 방폐장을 구현한 것이다.

이와 같은 지하 처분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땅속에 흐르는 지하수다. 김 책임연구원은 “벤토나이트는 물을 만나면 꽉 뭉치는 성질이 있어 핵종이 유출되지 않는다”며 “만에 하나 핵종이 유출되더라도, 10만년간 지상에 나오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라고 했다.

동굴 벽 곳곳에는 못처럼 생긴 센서들이 꽂혀 있었다. 어디서 균열이 발생하는지 찾기 위해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하는 장치다. 시설 암반에 일부러 균열을 내 충격으로 발생하는 탄성파(고주파)를 분석하는 것이다.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처분 용기를 땅속에 묻는 만큼 지진이나 지하수 등 지질작용의 영향이 적은 안정된 암반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지반 파악과 함께 처분 용기가 열과 수압을 얼마나 견디는지, 새로운 후보 물질은 무엇이 있는지 등에 대한 시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2026년부터 지하 500m 깊이 고준위 방폐장의 성능을 시험·연구하는 지하 연구 시설을 추가로 짓기로 하고 지난 6월 부지 공모를 시작했다. 강원 태백 등이 거론되고 있다. 120m 깊이를 넘어 500m 깊이에서 폐기물 처리 환경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이다. 원자력연구원은 “실증 부지를 선정해 실제와 가까운 환경에서 그간의 연구 성과를 검증할 계획”이라며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더 안전한 핵연료 처분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