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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손민균

글로벌 제약사들이 알츠하이머병 신약 개발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치매 치료 분야 연구·개발(R&D)이 큰 전환점을 맞았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최종 허가를 받아 시장에 나온 알츠하이머병 신약은 일본 제약사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의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와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키썬라(도나네맙)’ 등 두 개이다.

전문가들은 알츠하이머병 신약 등장으로 치매 치료 시장의 성장이 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첫 신약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한 가지 약물이 성공하면 이후 관련 약물이 폭발적으로 개발되는 게 제약 시장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시장이 2021년 17억3700만달러(약 2조4000억원)에서 2027년 338억 7200만달러(46조6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맥 주사제 이어 피하 주사제로 확장

16일 의학계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 신약을 개발한 선발 주자들은 약품의 형태를 바꿔 시장을 더 확대하고 있다. 에자이와 일라이 릴리가 모두 앞다퉈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피하주사 제형(SC)’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시장에 나온 레켐비와 키썬라는 모두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인 것을 제거하는 정맥주사(IV) 제형의 항체 치료제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신경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신경세포에 손상을 준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15년 전부터 쌓여 인지 기능 저하를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에자이가 개발 중인 레켐비 피하주사 제형은 지난 5월 FDA 신속 심사(패스트 트랙) 지정을 받았다. 회사는 이달까지 관련 자료 제출을 마치고, 오는 2026년 말까지 FDA 최종 승인을 받는 게 목표다. 일라이 릴리는 키썬라의 후속 약물로 피하주사 제형의 알츠하이머 치료제 후보 ‘렘터네터그(LY3372993)’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60~85세 알츠하이머병 환자 대상 임상 3상 시험을 진행 중이며, 오는 2026년 3월 완료할 계획이다.

피하주사 방식은 기존 정맥주사 제형보다 투약 시간이 짧은 데다 병원에 방문하지 않고 환자가 집에서 투여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제약사들은 환자 편의성을 높여 시장 점유율을 더 높이겠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문소영 대한치매학회 학술이사(아주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피하주사 제형으로도 개발되면 당뇨병 환자가 자가 투여하는 인슐린처럼 환자가 스스로 치료제를 투여할 수 있다”며 “피하주사제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접근성을 높이고, 환자 편의를 증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작용 낮추고 치료 효과 높이는 데 도전

현재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는 뇌출혈과 뇌부종이라는 부작용이 있다고 보고됐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하다가 뇌가 붓거나 출혈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벽에 붙은 포스터를 떼다가 벽지도 같이 떨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제약산업과 학계는 부작용을 줄이면서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 도전하고 있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가 대표적이다. 로슈는 현재 아밀로이드 베타를 겨냥한 항체 치료제 후보물질인 ‘트론티네맙’의 임상 1·2상 시험을 하고 있다. 로슈는 과거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임상 3상 시험 단계에 실패하며 개발을 중단했는데, 약물을 뇌에 보다 잘 침투시키기 위해 혈뇌장벽(血腦障壁·Blood Brain Barrier) 투과 기술을 적용해 개발을 재개했다. 산소나 영양분은 혈관에서 뇌로 가지만, 그보다 큰 단백질 같은 이물질은 혈관을 둘러싼 내피세포에 막힌다.

레켐비, 키썬라와 다른 치료 원리의 치료제 연구·개발도 잇따르고 있다. 케이 조(Kei Cho) 영국 킹스칼리지런던(KCL) 뇌과학과 교수는 영국의 바이오 기업과 일본의 다국적 제약사와 함께 타우 단백질을 겨냥한 새로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타우 역시 신경세포의 구조를 유지하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지만,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와 세포 내부에 쌓이면서 인지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국내에서도 새로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연구소 기업인 큐어버스는 알츠하이머병 치료 후보물질 ‘CV-01′을 먹는 약으로 개발하고 있다. 임상 1상 시험 중 5000억원 규모로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파마에 기술을 수출했다. CV-01은 뇌 염증을 조절하는 원리다. 항체 치료제보다 분자 크기가 훨씬 작아, 뇌 혈관 장벽을 통과하기 쉽도록 설계됐다고 회사는 밝혔다.

샤페론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물질 ‘누세린(NuCerin)’을 개발 중이다. 누세린은 뇌에 축적된 아밀로이드 베타가 염증을 유발하는 면역 단백질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생기지 않도록 억제한다. 이를 통해 신경세포 사멸을 막아 인지 능력을 보전하는 원리다.

엘앤제이바이오는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을 모두 제거하는 치료 원리의 신약 후보물질 ‘AL04′를 개발 중이다. 휴온스도 알츠하이머 항체 치료제 후보물질 HLB1-014를 개발 중이다. 서울대, 연세대 등과 초음파를 이용해 약물의 뇌 전달력을 높이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문소영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신약이 잇따라 나오면서 전 세계에서 치매 치료제 연구·개발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만큼, 향후에는 치매가 당뇨병처럼 관리 가능한 질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