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인(왼쪽)과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 PET 영상, 정상인은 뇌에선 대사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지만, 알츠하이머 환자는 뇌신경이 손상돼 대사작용이 줄어 파랗게 촬영된다./위키미디어

인간 뇌의 정보 처리 속도가 일반적인 인터넷 회선의 속도보다 느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학계 추정치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사람들이 특정 과업을 수행할 때 뇌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를 분석해 수치화한 결과 두뇌의 정보 흐름 속도가 10bps(초당 비트 수·bits per second)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뉴런(Neuron) 최신호에 게재됐다.

뉴욕타임즈(NYT)에 따르면 통상 고화질 동영상을 스트리밍하는 데는 약 2500만 bps가 소요되고, 일반적인 미국 가정의 다운로드 속도는 약 2억 6200만 bps에 달한다. 이에 비하면 10bps는 엄청나게 느린 속도다. 연구를 이끈 신경과학자 마르쿠스 매이스터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인간 뇌의 복잡성을 과도하게 높게 평가해온 일반적인 학계 연구 결과에 반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수치화하면 인간의 (정보 처리) 능력은 정말 느리다”고 했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특정 작업을 얼마나 빨리 수행하는지 확인해 생각의 흐름 속도를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가정했다. 예를 들어 타이핑을 할 때에는 주어진 문서를 보고 각 글자를 뇌가 인식한 다음 눌러야 하는 키를 움직이도록 근육에 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이 일련의 과정을 생각의 속도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더 빨리 입력할수록 생각의 흐름이 빠르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먼저 연구진은 지난 2018년 핀란드의 학자들이 16만 8000명의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1억 3600만 건의 타이핑 데이터 분석 결과를 활용했다. 당시 핀란드 연구진은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1분에 51개의 단어를 입력할 수 있다고 파악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1분에 120단어 또는 그 이상을 입력할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 공과대 연구진은 ‘정보 이론’이라는 수학의 한 분야를 활용해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반적인 생각의 흐름을 수치화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1분에 120단어를 입력한다고 가정해도 정보 처리 속도는 초당 10비트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다른 행동을 할 때에는 인간의 정보 처리 속도가 더 빠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정육면체 모양을 돌려가며 맞추는 퍼즐 ‘루빅스 큐브’의 달인들이 순식간에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은 행위는 정보 처리 속도가 더 빠를 수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연구진이 ‘큐브 달인’들을 모집해 분석한 결과 루빅스 큐브가 키보드 보다 신경써야 하는 조각의 수가 적어 빠른 처리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인 정보 처리 속도는 마찬가지로 초당 10비트에 그쳤다. 연구진은 이 외에도 기억력 테스트, 단어 분석 등 다양한 방식의 과제를 수행할 때 인간 뇌의 정보 처리 능력을 평가했으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일각에서는 결과값이 부정확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연구진이 인간 뇌가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행동들, 예를 들면 몸을 서있게 하거나 숨을 쉬게 하는 등의 행동에 사용되는 신호를 제외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런 일련의 행동을 모두 포함하면 인간의 정보 처리 속도는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조지 메이슨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마틴 위너는 NYT에 “이 연구 결과를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라며 “비행 패턴을 순식간에 바꾸는 날벌레들이 인간의 정보 처리 속도를 아득히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