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약기업 로슈가 중국 바이오 기업 이노벤트 바이오로직스의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 후보물질을 총계약 10억달러(약 1조 4665억 원) 규모에 사들였다. ADC는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약물을 전달하는 차세대 항암제 핵심 기술로 꼽힌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ADC를 확보하기 위한 조 단위 거래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노벤트 바이오로직스는 2일(미국 현지 시각) 로슈와 소세포폐암 항암제로 개발 중인 ADC ‘IBI3009’에 대한 글로벌 개발·판매 라이선스(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선급금은 8000만달러(약 1173억원)로, 이를 포함한 총계약 규모는 10조원(1조 4665억원)이다.
IBI3009는 정상 조직에서는 발현이 낮지만 특정 암, 특히 소세포폐암과 신경내분비종양에서 크게 과발현되는 항원인 DLL3를 표적으로 하는 ADC 항암제 후보물질이다. 이번 계약으로 로슈는 IBI3009의 개발, 제조, 상용화에 대한 글로벌 독점권을 확보하며 연구개발(R&D) 파이프라인을 강화했다.
로슈는 2013년 유방암의 HER2 단백질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 ‘캐싸일라’를 미국과 유럽에서 허가받으며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는 고형암 분야 최초의 ADC 항암제로, 2023년 연매출은 30억달러(약 4조4000억원)에 달한다.
로슈와 이노벤트는 IBI3009의 초기 단계 개발을 공동으로 진행할 계획이며, 그 이후에는 로슈가 전체 개발을 맡는다. 앞서 호주, 중국, 미국에서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아 2024년 12월 임상 1상 첫 환자 투여가 이뤄졌다.
보리스 L. 자이트라(Boris L. Zaïtra) 로슈 사업개발(BD) 책임자는 “이노벤트와의 이번 협력은 소세포폐암 환자를 위한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진행됐다”며 “ADC 분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고형암 환자의 미충족 의료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세계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ADC 분야 R&D와 기술 인수 거래가 활발하다. 암세포를 제대로 타격하지 못하거나 다른 정상세포에도 손상을 일으키는 기존 항암제의 한계를 뛰어넘을 기술로 꼽히기 때문이다. ADC는 마치 미사일(항체)이 표적(암세포)에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가 탄두(약물)를 터뜨리는 것과 같다. 그만큼 다른 세포에 손상을 주지 않아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치료 효과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에도 미국 애브비, 존슨앤드존슨(J&J),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BMS), 독일 머크, 덴마크 젠맙, 프랑스 입센 등이 ADC 후보물질 확보를 위해 조단위 거래를 이어갔다. 세계 의약품 시장조사 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22년 신규 ADC 임상 시험은 340건으로, 2020년 100건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ADC 치료제 개발 초기에는 안정적인 링커(Linker) 기술이 부족하고 약물 전달의 효율성과 약물의 낮은 세포 독성 문제로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는데, ADC 기술이 발전하면서 문제가 개선되면서 ADC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승인된 ADC 의약품은 총 15개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은 글로벌 ADC 시장이 2023년 97억달러 규모에서 2028년 198억달러로 연평균 15.2%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