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석 홍익대 교수는 지난 31일 "미래 반도체 성능은 배선 기술에 달려있다"고 말했다./홍아름 기자

반도체 기술의 발전은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반도체 성능은 칩 안에 소자와 회로가 얼마나 들어가는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2년마다 반도체 집적회로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숫자가 두 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단순히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는 것만으로 더 이상 혁신을 이루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지난 12월 13일 김준석 홍익대 교수와 김지환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 삼성종합기술원(SAIT) 공동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차세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트랜지스터와 함께 배선 기술, 특히 배선 물질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리뷰 논문을 발표했다. 트랜지스터의 크기를 줄이는 것만큼이나 배선 물질이 반도체 성능에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2024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홍익대에서 만난 김준석 교수는 트랜지스터들을 잇는 배선을 반도체의 ‘혈관’에 비유했다. 사람의 혈관이 모세혈관에서 점차 굵어져 대동맥까지 연결되듯 트랜지스터를 연결하는 배선도 얇은 것부터 두꺼운 것까지 다양한데, 이를 효율적으로 얇게 만드는 것도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이는 데 중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반도체 스케일링에서 일반적으로 트랜지스터 실리콘 크기를 줄이는 방법만 논의되지만, 배선 선폭이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비저항 증가 문제를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배선과 관련한 이슈를 조명했다”고 밝혔다. 비저항은 물질이 전자의 이동을 얼마나 방해하는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금속 배선이 얇아질수록 비저항이 높아지는데, 비저항이 커질수록 전자의 이동이 약해지면서 정보 전달 효율이 떨어진다.

현재 반도체 배선에는 주로 구리가 쓰인다. 하지만 구리 배선은 선폭이 좁아질수록 비저항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신호 지연과 전력 소비 문제를 일으킨다. 김 교수는 “트랜지스터 크기는 24~25㎚(나노미터, 10억분의 1m) 수준으로, 그사이에 들어갈 절연체 등을 제외하면 배선 간격은 10㎚보다 더 좁아진다”며 “구리 같은 기존 물질로는 배선 선폭이 얇아질수록 효율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배선 물질 개발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산업계에서는 루테늄과 코발트 같은 물질을 시험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나, 이는 단기적인 대안에 불과하다”며 “장기적으로는 더 혁신적인 물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논문은 김 교수가 산업계에서 학계로 넘어온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김 교수는 작년 9월 삼성종합기술원에서 홍익대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에서 다년간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반도체 패러다임을 탐구하고자 학문적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김 교수는 “기업에서는 장기적인 연구보다는 단기적 성과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며 “학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탐구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 교수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해 차세대 배선 물질을 연구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반도체 위에 바로 다른 반도체를 얹을 수 있는 3차원 적층 기술과 함께 배선 기술이 차세대 반도체를 이끌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산학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재도 학계에서 배선 물질을 연구하고 있지만, 비저항 값은 좋은데 열 안정성이 떨어져 실제로 사용할 수 없거나, 공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연구하다 보니 실제로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산업계와 협력해 400도 정도의 배선 공정을 견딜 수 있으면서 비저항이 낮고, 배선 공정 중 발생하는 화학적 반응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학계와 산업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참고 자료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k6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