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시원한 ‘트림’을 못 하게 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다행히 사람 대상은 아니다. 온실 가스 배출에 한몫하는 소의 트림을 겨냥한 것이다. 인간과 달리 되새김질을 하는 소는 소화 과정에서 다량의 메탄가스가 발생하는데, 트림과 호흡으로 배출한다. 메탄이 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은 이산화탄소보다 20배 이상 큰데, 소 한 마리가 배출하는 메탄은 연간 100㎏에 달한다. 유엔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가축이 유발하는 온실가스는 지구 전체 배출량의 14.5%에 이르고, 가축 중에선 소가 차지하는 비율이 70%에 육박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가 발간하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올해의 혁신 기술로 소의 트림 줄이기에 주목한 배경이다.
◇소 트림 억제해 온실가스 감축
MIT 테크놀로지 리뷰(이하 MIT 리뷰)는 이 기술을 포함해 10대 과학기술을 ‘2025년 혁신 기술’로 선정해 지난 3일 발표했다. MIT 리뷰는 올해 소의 트림 억제가 본격 성과를 냄으로써 기후위기 대처에 실질적 진전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상용화된 소 트림 억제용 사료 보충제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전에는 소의 안면에 필터 마스크를 씌워 메탄 배출을 줄였는데, 신기술은 내장의 효소를 억제해 메탄 발생을 줄이는 방식으로 트림을 막는 것이다. 이 기술을 개발한 회사는 “젖소의 메탄 배출량을 평균적으로 30%, 육우의 경우 최대 45%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소 트림 억제제는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고, 세계 60여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MIT 리뷰는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 주사제도 혁신 기술로 꼽고 “에이즈(AIDS)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개발한 이 약물은 HIV 예방 효능이 6개월간 지속된다.
◇”공룡(LLM)은 물러나세요”
생성형 AI(인공지능) 검색도 올해 대세가 될 혁신 기술로 꼽혔다. 이는 키워드를 검색창에 입력해 관련 웹페이지 등을 찾고 하나씩 열어가면서 원하는 정보를 구하는 기존 검색과 달리, AI가 이용자와 대화하듯 검색 결과를 내놓는 방식이다. 오픈AI의 ‘서치GPT’, 제미나이를 적용한 구글의 AI 오버뷰 등이 대표적 예다. MIT 리뷰는 “기존 검색 엔진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라고 했다.
AI의 ‘소형 언어 모델’(SLM)도 올해 더욱 부상할 혁신 기술로 선정됐다. 수천억 개에 달하는 매개변수의 ‘대형 언어 모델’(LLM)보다 훨씬 전력 소모가 적어 온디바이스(내장형) AI로 제격이라는 것이다. MIT 리뷰는 “SLM은 특정 작업에서 LLM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며 “공룡(LLM)은 물러가고 미래는 더 작고 민첩한 동물(SLM)의 것”이라고 했다.
◇줄기세포로 뇌전증, 당뇨 치료
배아(胚芽)줄기세포는 정자와 난자가 만난 지 5일쯤 된 배아(수정란)에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원시(原始)세포를 뜻한다. 이는 인체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 가능해 특정 부위 세포가 손상됐을 경우 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료할 수 있다. 다만 아직은 의료 혁명을 가져올 정도로 큰 성과를 내진 못한 상태다. MIT 리뷰는 줄기세포 치료법을 혁신 기술로 꼽고 난치병을 치료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특히 뇌전증과 소아당뇨(제1형 당뇨)에서 줄기세포 치료가 효능을 보인 점을 예로 들며 5년 후에는 의료 혁명이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밖에 올해 각국으로 확산할 로보택시, 지속 가능 항공유(SAF)로 불리는 청정 제트 연료, 재생에너지로 만든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친환경 ‘그린(green) 철강’ 등이 혁신 기술로 선정됐다. AI 기술 발전에 힘입어 무엇이든 빠른 속도로 배울 수 있게 된 로봇도 혁신 기술 목록에 올랐다. 역대 최대 규모의 광시야 천체망원경이 설치된 칠레의 베라 루빈 천문대 또한 올해의 혁신 기술로 꼽혔다. 이곳의 망원경으로 남반구 하늘을 초고해상도로 10년간 정밀 관측하고, 올해 첫 촬영 사진이 이르면 상반기 공개될 예정이다.